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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 로이:부상으로 추락한 신인왕 신인왕 브랜든 로이 브랜든 로이는 워싱턴 주의 시애틀 출신으로 2002년 워싱턴 대학교에 입학하여 워싱턴 허스키스 소속으로 대학무대에서 선수도 활동하게 된다. 그는 여느 선수들처럼 얼리 드래프트가 아닌 4년 동안 대학무대에서 기량을 갈고닦으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집중했고 그 결과 4학년 때 Pac-10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과 그의 등번호가 대학팀에서 영구 결번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드래프트 당시에 로이는 이미 NBA에서 통할만한 완성형 선수로 즉시전력감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더 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뒤따랐다고 한다. 드래프트에서 6번으로 미네소타에 지명된 그는 직후 포틀랜드에 지명된 랜디 포이와 트레이드되어 포틀랜드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포틀랜드는 2000년대 초반 .. 2022. 2. 8.
로이 히버트:골밑만 지키는 올드스쿨 센터 센터 명가 조지타운 로이 히버트는 조지타운 예비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조지타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조지타운은 앨런 아이버슨 이전에는 센터를 장 육성하는 학교로 유명했는데 그 대표적인 선수들로는 패트릭 유잉, 알론조 모닝, 디켐베 무톰보 등이 있다. 입학 당시까지는 신장만 좋은 편이어서 1학년 평균 5.1 득점, 3.5 리바운드만을 기록하며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열심히 훈련한 끝에 로이 히버트는 2학년에는 평균 11.6 득점, 6.9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3학년에는 제프 그린과 함께 조지타운을 NCAA 토너먼트 4강까지 진출시키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데 특히 4강에서 패하긴 했지만 당시 대학리그를 점령하고 후에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되게 되.. 2022. 2. 7.
그렉 오든:부상으로 쓰러진 비운의 유망주 이상적인 신체조건 그렉 오든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많은 주목을 받던 선수였다. 인디애나의 로렌스 노스 고등학교에서 팀을 3년 연속 인디애나주 챔피언으로 만들며 게토레이 선정 청소년 농수선수에 선정되었으며 2006년 인디애나주 Mr.Basketball, 맥도널드 올 아메리칸에도 선정되는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제2의 데이비드 로빈슨이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로빈슨과는 다르지만 그만큼 잠재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2006년부터는 달라진 규정으로 19세 미만 선수의 드래프트 참가가 불가능했기에 팀 메이트였던 마이클 콘리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 입학한다. 대학시절에는 손목이 골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을 NCAA 토너먼트 결승까지 이끌었고 결국 패배했지만 상대팀인 플로리다 대학교의 조아킴.. 2022. 2. 7.
조 스미스:이면계약 사건과 떠돌이 생활 1라운드 1순위 조 스미스는 NBA에 잊을 수 없는 기록을 남긴 채 떠돌다 사라져 버린 전 NBA 선수이다. 스미스는 메릴랜드 대학 출신으로 1995년 1라운드 1번으로 골든스테이트에 드래프트 되었다. 그는 대학시절 평균 20 득점, 10.6 리바운드, 2.9 블록을 기록한 피워 포워드 겸 센터였는데 95년 드래프트에 나온 미래의 NBA를 대표하게 될 포워드 자원들인 케빈 가넷, 안토니오 맥다이스, 라쉬드 월러스, 커트 토마스 등을 모두 제치고 1순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드래프트 순번도 그의 실력도 아니라 돈이었다. 당시 90년대에는 마이클 조던과 드림팀 등의 인기로 NBA가 전 세계의 관심을 받으며 수익이 급격하게 증가한 시기로 그 수익이 선수들의 연봉에도 영향을 주다 보니 고액 연봉자들이.. 2022. 2. 6.
델 커리:NBA의 대를 잇는 슈팅명가 야구를 포기하고 농구를 선택하다 델 커리는 1982년 버지니아 공대에 입학해 농구와 야구를 둘 다했던 독특한 이력의 선수이다. 농구에서는 통산 2,389 득점과 295개의 스틸을 기록했고 야구에서는 6승 1패 방어율 3.81을 기록했다고 한다. 85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14라운드 359위로 지명을 받게 되지만 거절하고 농구선수를 선택하게 된다. 14 라운드 300번대의 지명이라 굉장히 낮은 순번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이 해 드래프트를 보면 배리 라킨, 배리 본즈, 라파엘 팔메이로가 1라운드이고 랜디 존슨이 2라운드, 데이비드 저스티스 4라운드, 채드 크루터 등이 5라운드에 지명되었지만 22라운드 511위에 존 스몰츠나 36라운드 826위의 짐 애보트를 보면 절대적인 위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야구 선.. 2022. 2. 6.
덕 노비츠키:댈러스 매버릭스 41/21/1-2 댈러스에서의 시작 덕 노비츠키는 군 복무를 포함한 독일에서의 모든 생활을 마치고 1998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한다. 1라운드 9번으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되지만 댈러스가 지명했던 로버트 트레일러라는 선수와 트레이드되어 댈러스로 이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역사상 최악이라고 할만한 트레이드가 되었지만 로버트 트레일러는 당시 대학에서 트랙터라 불리며 골밑에서만큼은 샤킬 오닐 부럽지 않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였기에 늘 골밑이 문제였던 밀워키에게는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다. 대학에서 인정받은 인사이더와 외국에서 온 홀쭉한 장신의 포워드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라면 결과는 당연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의 데뷔 시즌 NBA가 파업으로 시즌 개최가 불투명했기 때문에 노비츠키는 독일로 돌아가 원 소식팀에서 다시 뛰고 있었.. 2022. 2. 5.
덕 노비츠키:댈러스 매버릭스 41/21/1-1 NBA를 목표로 한 덕 노비츠키 덕 노비츠키는 독일 뷔르츠부르크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 최고의 핸드볼 선수였고 그의 어머니는 독일 국가대표 농구선수였다. 그이 누나도 육상선수 출신이어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접했고 주로 테니스와 핸드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급격한 성장이 종목을 농구로 바뀌게 만들었다. 농구에도 금세 재능을 보인 노비츠키는 지역 농구팀인 DJK 뷔르츠부르크에서 홀거 게슈빈드의 눈에 들게 되고 그에게 개인교습을 받게 된다, 게슈빈드는 그를 단순한 농구선수가 아닌 하나의 성숙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본인이 슛과 패스 연습을 지도했으며 악기 연주나 독서를 권장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노비츠키는 몇 년 후 상당한 성취를 이루어냈고 이에 감탄한 게슈빈드는 노비츠키에.. 2022. 2. 5.
스티브 스미스:수상이력이 부족한 스타 마이애미 히트의 루키 스티브 스미스는 미시간 주립대를 4년간 다니며 대학 역대 최다 득점자이며 어시스트, 리바운드에서도 상위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대학시절 총 122경기에 출장하였는데 3학년 시절에는 평균 20.2 득점, 7.0 리바운드, 4.8 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4학년 때에는 평균 25.1 득점, 6.1 리바운드, 3.6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년 연속 20 득점, 6 리바운드, 3 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하며 그의 능력을 스카우터들에게 보여주었다. 대학시절 평균 기록도 평균 18.5 득점, 6.1 리바운드, 3.7 어시스트로 나쁘지 않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득점력이 폭발하는 모습은 스카우터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대학을 마치고 1991년 드래프트에 참가했고 1라운드 5순위로 마이.. 2022. 2. 4.
바비 필스:떠나간 샬럿 호넷츠의 심장 동물학과 출신 바비 필스 샬럿에서 태어난 바비 필스는 샬럿에서 태어나 루이지애나주의 흑인대학인 서던 대학교 동물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어린 시절 농구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서던 대학교에서 학업과 농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대학생활을 하였다. 대학 졸업반이었던 1990-91 시즌에는 123개의 3점 슛을 성공시키며 28.4 득점, 4.7 리바운드 1.9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시절 경기당 4.39개의 3점 슛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수 필스는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되는데 약체팀의 에이스였던 그에게 주목하는 팀은 없었고 2라운드 45번으로 밀워키에 지명받지만 한 경기도 뛰어보지 못하고 CBA의 수 폴스 스카이워커스에서 뛰게 된다. 이 팀에서 뛰던 2.. 2022.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