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BA10

그렉 오든:부상으로 쓰러진 비운의 유망주 이상적인 신체조건 그렉 오든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많은 주목을 받던 선수였다. 인디애나의 로렌스 노스 고등학교에서 팀을 3년 연속 인디애나주 챔피언으로 만들며 게토레이 선정 청소년 농수선수에 선정되었으며 2006년 인디애나주 Mr.Basketball, 맥도널드 올 아메리칸에도 선정되는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제2의 데이비드 로빈슨이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로빈슨과는 다르지만 그만큼 잠재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2006년부터는 달라진 규정으로 19세 미만 선수의 드래프트 참가가 불가능했기에 팀 메이트였던 마이클 콘리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 입학한다. 대학시절에는 손목이 골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을 NCAA 토너먼트 결승까지 이끌었고 결국 패배했지만 상대팀인 플로리다 대학교의 조아킴.. 2022. 2. 7.
마이클 핀리:팀에게 버림받은 에이스 21번 픽의 마이클 핀리, 가치를 증명하다 마이클 핀리는 위스콘신 대학 출신의 슈팅가드로 1995년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진출한다. 1995년은 뛰어난 파워포워드들이 많이 등장한 해이기도 했는데 1번이 조 스미스, 2번이 안토니오 맥다이스, 4번이 라시드 월러스, 5번이 케빈 가넷이었고 그 외에도 테오 라틀리프, 콜리스 윌리엄슨, 체로키 팍스, 커트 토마스 등이 드래프트 되었다. 가드에서는 제리 스택하우스와 데이먼 스타더마이어가 주목받았는데 핀리는 좋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부상 경력 때문에 순위가 21번까지 내려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대학시절 활약을 아는 스카우터들은 스틸 픽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고 핀리는 피닉스에 데뷔하며 바로 자신의 가치를 성적으로 증명해냈다. 루키 시절 통산 15 득점, 4.6 .. 2022. 2. 3.
브루스 부웬:최고의 수비와 최악의 매너 여러 팀을 전전한 브루스 보웬 캘리포니아 출신의 브루스 보웬은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하고 프랑스 리그와 CBA를 전전하던 선수였다. 프랑스 리그에서는 좋은 득점력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그는 3점 슛 외에 별다른 공격 옵션이 없는 전문 수비수로 더 유명하다. 마이애미의 팻 라일리 감독의 눈에 들어 96-97 시즌 10일 계약을 맺기도 하지만 팀에 그가 비집고 들어갈만한 틈은 없었고 바로 방출당한다. 97-98 시즌 보스턴 셀틱스에서 61경기에 출전하며 경기당 21.4분을 뛰며 다음 시즌을 기약하지만 폴 피어스가 입단하며 그의 역할은 줄어들게 되고 30경기 출전에 그치게 된다. 이후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되고 조금 뛰다가 시카고로 다시 트레이드되지만 트레이드 직후 방출당했고 다시 마이애미와 계약을 하게 된다... 2022. 2. 3.
월리 저비악:수비가 빈약한 가넷의 지원군 마버리가 떠난 가넷을 돕다 스페인 출신의 월리 저비악은 1999년 드래프트에서 6번으로 미네소타에 지명된다. 입단 초기에는 이 선수의 이름을 가지고 월터냐 월리냐 저비악은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 것이냐로 국내 농구잡지들이 혼란스러워 하기도 했었다. 본명은 월터였지만 이제는 월리 저비악이라고 NBA 공식 사이트에도 기록되어있다. 그는 마버리가 떠난 미네소타에 입단하여 첫해부터 선발을 보장받으며 활약한다. 매 경기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고 야투율이 50%를 넘길 정도로 뛰어난 슛을 가진 선수였다. 입단 첫 시즌부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지만 1라운드에서 탈락하게 되는데 플레이오프에서는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두 번째 시즌에는 류키 시절보다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며 평균 14 득점, 5.5 리바운.. 2022. 2. 2.
샤리프 압둘라힘:'96 드래프트의 숨겨진 스타 전미 최고의 고교 선수 샤리프 압둘라힘은 이름으로 인해 오해받곤 하지만 미국인이며 부모가 모두 무슬림이어서 태어나면서부터 이 이름을 사용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2년 연속으로 Mr. Basketball을 수상할 정도의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선수였고 팀을 주 우승으로 이끈 에이스였다. 졸업 후 UC버클리에 진학하였으며 1학년 때 평균 21.1 득점 8.4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1학년 선수 최초로 Conference Player of The Year를 수상하기도 한다. 이후 바로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때가 1996년으로 NBA 역사상 가장 스타를 많이 배출하기도 했던 그 해였다. 드래프트에 참가했던 선수들만 나열해도 올스타팀이 구성될 정도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쏟아졌는데 앨런 아이버슨, 스테.. 2022. 1. 30.
안토니오 맥다이스:앨라배마의 짐승 앨라배마의 짐승 앨라배마 대학 출신인 안토니오 맥다이스는 엄청난 운동신경으로 NBA 스카우터들에게 일찌감치 눈도장을 찍어놓은 선수였다. 대학시절 올 아메리카 세컨드 팀에 선정되기도 한 그는 1995년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다. 이 드래프트에서 맥다이스는 2순위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에 지명받고 바로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 되게 된다. 95년 드래프트에서는 5위가 케빈 가넷, 라쉬드 월러스가 4위, 제리 스택하우스가 3위였던 드래프트였다. 맥다이스의 가치를 어느 정도로 평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덴버에서 루키시즌을 시작한 그는 그 해 13.4 득점 7.5 리바운드 1.5 블록을 기록하며 괜찮은 성적을 냈고 루키 퍼스트팀에도 선정되게 된다. 당시의 덴버는 디켐베 무톰보가 있긴 했지만 수비에 비해 별 .. 2022. 1. 25.
앤퍼니 하더웨이:부상으로 몰락한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 이후의 최고의 아이콘 한때 그랜트 힐과 함께 NBA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던 선수였던 앤퍼니 하더웨이는 멤피스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낸 소년이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할머니 손에 자랐지만 할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우범지대에 살았던 그는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농구선수로 성장하게 된다. 하더웨이가 농구를 시작한 계기가 조금 특이한데 친구들과 미식축구를 하다 크게 다치고 돌아오는 날이 많았는데 할머니가 그에게 저런 덩치들에게 깔리면 넌 죽고 말 거라고 얘기하며 농구도 미식축구만큼이나 재밌는 스포츠라고 설득해서였다고 한다. 농구선수를 선택한 앤퍼니 하더웨이는 고등학교 시절 평균 36.6 득점 10.1 리바운드 6.2 어시스트 3.9 스틸 2.8 블록슛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으로 전미에서.. 2022. 1. 24.
그랜트 힐:전성기를 앗아간 발목부상 아버지에게 재능을 물려받다 그랜트 힐의 아버지는 예일 대학교를 나온 엘리트였으며 미식축구 선수기도 했다. 그는 12년 동안 러닝백으로 활약했고 신인왕과 4번의 올스타, 한 번의 우승을 경험했을 정도의 좋은 커리어를 가진 순수였다고 한다. 그랜트 힐은 이런 아버지의 피지컬과 운동신경을 물려받아 대학시절 대단한 활약을 하며 듀크대학교를 2년 연속으로 NCAA 정상에 올려놓게 된다. 이런 활약 때문에 듀크대학교에서는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정도였다. 4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참가한다. 그의 대학시절 엄청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퍼듀의 글렌 로빈슨에게 1순위를 빼앗기긴 했지만 결국 최후에 승리한 것은 그랜트 힐이었다. 힐은 물론 공동수상이긴 했지만 루키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제이슨.. 2022. 1. 24.
케빈 존슨:피닉스의 전설 새크라멘토 시장되다 90년대 최고의 공격형 포인트가드 케빈 존슨 케빈 존슨은 1990년대 존 스탁턴, 게리 페이튼, 팀 하더웨이와 더불어 NBA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였다. 통산 9.1 어시스트를 기록할 정도로 동료를 살려줄 줄 알았던 그였지만 팬들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하킴 올라주원에게 In your face덩크를 성공시킬 정도의 운동신경을 가진 폭발력 있는 공격형 가드의 이미지였다. 그는 UC 바클리를 졸업 후 87년에 1라운드 7번으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드래프트 되었다. 당시 팬들은 팀에 마크 프라이스라는 좋은 가드가 있었기에 다른 포지션의 선수를 지명하기를 원했지만 구단에서는 그를 지명했고 팬들은 야유를 쏟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드래프트 1년 전 케빈 존슨은 오크랜드 어슬레틱스에 유격수로 지명될 정도로 농구 외.. 2022.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