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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로빈슨:퍼듀 대학의 Big Dog

by 이니웍스 2022. 1. 21.

아마추어 최고의 재능

글렌 로빈슨은 인디애나 북부의 게리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실업률이 높고 범죄율이 치솟던 살기 힘든 도시였다고 한다. 로빈슨은 이곳에서 자랐고 자칫하면 교도소나 들락날락할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교도소를 그를 홀로 키웠는데 다행히도 그는 농구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이 재능으로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NBA 선수들이 엄청난 아마추어에서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지만 글렌 로빈슨은 그들과도 차원이 다른 선수였다.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늦은 중학교 3학년 시절 농구부에 가입해 농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엄청난 재능의 힘으로 빠르게 지역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로 인정받게 된다. 1991년 인디애나주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에게 주어지는 미스터 인디애나 바스켓볼 어워드를 수상하고 그는 퍼듀 대학에 진학한다. (빅독이라는 별명도 퍼듀에서 생기게 된다.)

1992년부터였던 대학 때는 그야말로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매경기 선보였다. NCAA 전체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공격력을 가진 선수로 평가되었으며 1학년 시절 경기당 24.1 득점, 9.2 리바운드, 3점 슛 성공률 40%를 기록했다.

2학년 때는 훨씬 강력해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상대는 그에게 늘 더블팀을 지시했고 그마저도 신통치 않아 트리플팀까지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기에 듀크대에는 그랜트 힐이 있었는데 로빈슨은 그랜트 힐 보다도 더 위협적인 선수로 평가받고 있었다. 2학년 시절 평균 30.3점을 기록하고 득점왕, 존 우든상, 네이스미스 어워드 등 모든 상을 독차지하였다.

당시의 언론은 조던 이후의 아이콘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글렌 로빈슨은 그에 대한 해답처럼 여겨졌었다. 로빈슨은 2학년을 마치고 프로 진출을 선택한다.

 

밀워키의 에이스

글렌 로빈슨은 예상대로 전체 1번으로 지명되어 밀워키 벅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드래프트에는 공동 신인왕을 거머쥐게 될 그랜트 힐과 제이슨 키드도 있었다. 밀워키는 하위권 팀이었지만 빈 베이커라는 뛰어난 파워포워드가 있었고 팬들은 그를 베이커와 함께 밀워키의 미래를 책임질 프랜차이즈 스타로 여겼다. 

그런데 로빈슨은 아마추어때의 성공적인 활약으로 거만했고 구단이 승인하기 어려운 거액의 장기 계약을 요구했다.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절충안으로 계약을 마무리 짓고 밀워키에서의 본격적인 선수 생활에 들어간다. 로빈슨은 리복과 후원 계약을 맺었고 루키 시즌부터 평균 21.9 득점을 올리며 단번에 스타가 된다. 워낙 슛이 뛰어났고 좋은 피지컬과 스피드도 가지고 있는 선수여서 붙으면 돌파하고 떨어지면 점프슛을 날렸다. 하지만 밀워키의 성적은 여전히 저조했고

저조한 성적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밀워키라는 시장이 스몰마켓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로빈슨에 대한 관심도 적어졌다.

그러다 조지 칼 감독의 지도아래 샘 카셀, 레이 앨런과 함께 화끈한 공격농구를 선보이며 98-99 시즌에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이 당시 주전이었던 샘 카셀, 레이 앨런, 글렌 로빈슨, 팀 토마스는 모두 달릴 줄 아는 선수였고 외곽에서 자신 있게 슛을 날릴 줄 아는 선수들이었다. 어디에서 누가 서있던 상대 팀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고 이것이 팀의 성적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2000-01 시즌은 밀워키를 15년만에 컨퍼런스 파이널로 진출시켰지만 아이버슨의 필라델피아에 무릎을 꿇고 만다.

이후 밀워키는 다시 내리막을 걷게 되고 로빈슨도 애틀랜타와 필라델피아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지만 모두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부상으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고 자리만 지키다 2004-05년 샌안토니오에서 정규시즌 9 경기만을 뛰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벤치멤버로 활약해 우승반지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쓸모없는 수비수 글렌 로빈슨

글렌 로빈슨은 강력한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형편없었다기보다는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요즘 제임스 하든이나 르브론 제임스가 가끔 수비에서 자리만 차지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그 정도 수준이었다. 게다가 다혈질이어서 충돌이 잦았다. 다만 말년에 샌안토니오에서 코치들의 요구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 결과 우승까지 이어졌던 것을 보아 조금 더 젊었을 때 겸손한 모습을 보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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