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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노비츠키:댈러스 매버릭스 41/21/1-2

by 이니웍스 2022. 2. 5.

댈러스에서의 시작

덕 노비츠키는 군 복무를 포함한 독일에서의 모든 생활을 마치고 1998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한다. 1라운드 9번으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되지만 댈러스가 지명했던 로버트 트레일러라는 선수와 트레이드되어 댈러스로 이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역사상 최악이라고 할만한 트레이드가 되었지만 로버트 트레일러는 당시 대학에서 트랙터라 불리며 골밑에서만큼은 샤킬 오닐 부럽지 않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였기에 늘 골밑이 문제였던 밀워키에게는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다.

대학에서 인정받은 인사이더와 외국에서 온 홀쭉한 장신의 포워드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라면 결과는 당연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의 데뷔 시즌 NBA가 파업으로 시즌 개최가 불투명했기 때문에 노비츠키는 독일로 돌아가 원 소식팀에서 다시 뛰고 있었다. 그 후 NBA와 노조의 합의로 단축시즌으로 시즌을 치르게 되며 노비츠키는 댈러스로 복귀해 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이 시즌 노비츠키는 47경기에 출장했고 평균 8.2 득점, 3.4 리바운드를 기록하였으며 슛 성공률도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데뷔 시즌 NBA에서 그의 수비는 구멍에 가까웠다.
하지만 2년차부터는 발전한 모습으로 평균 득점이 9점 가까이 상승했고 대부분의 기록에서 루키 시즌과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성정 향상의 비결에는 새 구단주인 마크 큐반이 있었고 그는 괴짜였지만 구단에 헌신적인 구단주였고 선수들이 농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돈을 아끼지 않고 지원을 했다.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노비츠키는 스티브 내쉬, 마이클 핀리와 함께 팀을 이끌게 된다.

3년 차에는 팀을 플레이오프로 진출시킨 일등공신이었고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샌안토니오에게 패하며 탈락할 때까지 팀의 플레이오프 득점 1위를 기록하며 팀의 주 득점원으로서 기량을 발휘했다. 그러나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해도 늘 파이널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게 되자 03-04 시즌에는 앤트완 재미슨과 앤트완 워커를 영입하며 파이널을 노려보았지만 1라운드에서 바로 탈락하고 만다.
04-05 시즌 그의 절친이었던 스티브 내쉬가 피닉스로 이적하고 마이클 핀리도 부상으로 기량이 하락하며 팀의 중심이자 리더도 그가 맡게 되었고 노비츠키는 늘 그랬던 것 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경기를 치렀다. 외롭게 분전하는 그를 돕기 위해 제이슨 테리, 제리 스택하우스, 키스 밴 혼 등을 영입하였고 플레이오프에 다시 진출하지만 스티브 내쉬의 피닉스에게 2라운드에서 탈락하게 된다.

마침내 파이널

05-06 시즌 핀리마저 팀을 떠났지만 덕 노비츠키는 여전히 팀에 남아 댈러스를 이끌었다. 팀은 60승 22패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멤피스 그리즐리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피닉스 선즈를 차례로 격파하며 마침내 처음으로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그는 정규시즌에도 강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더 집중력을 발휘했고 특히 샌안토니오와의 대결에서 팀 던컨과의 대결도 볼만했지만 특히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게임 종료 직전 바스켓 카운트를 얻어내며 게임을 연장으로 이끌며 팀을 구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파이널에서는 마이애미 히트를 상대로 1, 2차전을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나 싶더니 내리 4연패를 하며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다음 시즌 댈러스는 팀 창단 이래 최고성적을 기록하였고 서부 전체 1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른다. 정규시즌의 뛰어난 활약으로 생애최초로 MVP도 수상하게 된다. 이렇게 구단 역사에 남을만한 시즌을 치렀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또다시 고배를 마시게 된다. 이대부터 계속 플레이오프에 오르지만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빠르게 탈락하는 모습을 보이며 우승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NBA 챔피언

2010-11 시즌 팀은 에릭 뎀피어를 버리고 타이슨 챈들러를 영입하여 인사이드를 강화했고 페자 스토아코비치도 영입하며 팀의 빈 곳을 메꿔가며 정규시즌 막판까지 레이커스와 2위 경쟁을 펼친다. 결국 덕 노비츠키의 부상과 버틀러의 시즌 아웃으로 서부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1라운드에서 포틀랜드를 4승 2패로 제압했고 2라운드에서 레이커스를 스윕 하며 컨퍼런스 결승에 올랐다.

서부지구 결승 1차전에서는 노비츠키가 48 득점, 6 리바운드, 4 블록, 4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4차전에서는 연장 끝에 7점 차로 승리하였는데 이때의 기록이 40 득점, 5 리바운드였다. 제대로 불이 붙어버린 댈러스는 오클라호마 시티를 4승 1패로 누르며 파이널에 진출한다.
노비츠키의 두번째 파이널 상대는 마이애미 히트였다. 그의 NBA 커리어 첫 번째 파이널에서 그에게 좌절을 선사한 드웨인 웨이드는 여전히 건재했고 팀에는 르브론 제임스와 크리스 보쉬도 함께 있었다. 언론과 전문가들도 대부분 마이애미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던 상황에서 치러진 1차전 노비츠키는 27 득점을 기록하며 양 팀 최다 득점을 기록하지만 접전 끝에 패했고 손가락 힘줄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하게 된다.

2차전은 마이애미에게 3 쿼터까지 끌려가고 있었기에 다시 댈러스의 패로 기록되나 했지만 4 쿼터 제이슨 테리와 노비츠키의 활약으로 1승을 챙긴다. 이후 다시 1승 1패를 기록하였고 댈러스 홈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경기에서 경기 막판 노비츠키, 테리, 키드의 연속 득점으로 중요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6차전까지 승리하며 꿈에 그리던 우승을 하게 된다.

이 시리즈는 5차전에서 독감에 걸린 노비츠키를 조롱하는 웨이드와 제임스의 모습으로 모두가 댈러스의 우승을 응원하게 되기도 했었지만 노비츠키는 경기에만 집중하며 팀에 우승 트로피를 선사하게 된다. 파이널에서의 노비츠키는 평균 26 득점, 9.7 리바운드에 자유투 성공률은 97.8%로 46개 중에 한 개만 실패하는 대단한 집중력을 선보이며 파이널 MVP까지 수상한다.

 

영구 결번된 덕 노비츠키의 백넘버

이후 꾸준한 성적을 보여주며 통산 기록을 경신하고 있었고 통산 1500 경기 출전과 통산 득점 6위에 오르기도 한다.
1팀에서 41번을 달고 21년간 활약한 그는 2019년 한 팀에서 가장 오래 뛴 선수이자 올타임 3점 슛 개수 11위라는 기록과 최고령 30 득점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은퇴를 선언한다. 이날 그의 마지막 홈경기에는 NBA 레전드들도 자리를 함께 해주었는데 어린 시절 그의 재능을 직접 목격한 찰스 바클리와 스카티 피펜, 그가 늘 비교당하며 넘기를 원했던 래리 버드, 유럽 선수의 NBA 진출의 토대를 만든 데틀레프 슈렘프, 숀 캠프 등이 참석했다. 특히 바클리는 그에게 격려와 칭찬,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선배이자 형님 같은 인물이었기에 그와 포옹할 때는 더 감격스럽기도 했다. 참석해준 모든 이들이 그에게는 롤모델이었다.
마지막 원정 경기는 텍사스 라이벌인 샌안토니오였는데 스퍼스에서는 그의 은퇴를 빛내주기 위해 헌정 영상을 틀어주며 예우를 보였고 덕 노비츠키는 감독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스퍼스 팬들은 그가 자유투 시도할 때 MVP를 연호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의 마지막 슈팅하는 모습에 팬들과 스퍼스의 포포비치 감독도 박수를 보내며 그의 마지막 모습을 함께 기억해주었다.
그는 늘 팀과 동료를 위하는 선수였고 부상에도 팀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이기적이지 않은 슈퍼스타였다. 21년간 댈러스의 41번이었고 앞으로도 댈러스의 41번으로 기억될 팀의 역사 그 자체이고 NBA에서 가장 성공한 유럽 선수로 기억되는 선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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