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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웨스트:오직 우승을 위한 선택

by 이니웍스 2022. 2. 9.

미들슛 장인의 데뷔

데이비드 웨스트는 신시내티에 위치한 제이비어 대학 출신으로 2003년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진출한 선수이다. 1라운드 18순위로 뉴올리언스 호네츠에 지명을 받았지만 데뷔 초에는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3년 차인 05-06 시즌부터 크리스 폴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팀의 주축 멤버로 발돋움하게 된다. 웨스트가 리그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는 세 시즌이 걸렸지만 그는 제이비어 대학교 4년간 꾸준히 기량을 갈고닦으며 스스로를 발전시켜 온 선수였다.

그는 대학 1학년에 신인으로서 33게임에 모두 선발 출장을 하였고 11.7 득점, 9.1 리바운드, 1.7 어시스트, 1.6 스틸, 1.7 블록을 기록하였었는데 이는 출장시간이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올린 기록이었다. 2학년부터는 더 많은 시간 출전하게 되면서 모든 부분에서 상승한 성적을 내며 17.8 득점, 10.9 리바운드, 2 어시스트, 1.4 스틸, 2.1 블록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런 성장 새는 3~4학년 때까지도 이어졌고 4학년에는 평균 36.5분을 플레이하며 20.1 득점, 11.8 리바운드, 3.2 어시스트, 1.6 블록을 기록한다. 제일 놀라운 부분은 자유투인데, 많은 NBA 선수들이 자유투 실력이 개선되지 않아 전담 코치를 붙여보기도 하지만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선수가 많은데 데이비드 웨스트는 1학년 시절 66.7%였던 자유투 성공률을 2학년 때는 74%, 3학년 때는 76.8%, 4학년 때는 81.6%까지 끌어올린다.

이는 프로에서까지 이어졌고 데뷔 2년 차 때까지는 시도 자체가 적어 성공률이 별로였지만 2008-09 시즌에는 88.4%의 성공률을 보여주기도 한다.

데이비드 웨스트는 크리스 폴과의 호흡이 굉장히 좋았는데, 폴이 팀원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타입의 포인트가드였지만 웨스트가 워낙 다양한 공격 옵션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기에 폴이 더 다양한 위치에서 여러 가지 작전을 펼치는 것이 가능했다. 그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골밑에서 패스를 받아 마무리하는 능력이 좋았고 포스트업과 점프슛 등 다양한 공격 옵션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

특히 코트 우측에서의 미들슛의 정확도가 대단했는데 이 위치에서 워낙 정확도가 높다 보니 상대 수비수가 포스트업, 포스트업 후 터닝 점프슛, 그 위치에서 바로 올라가는 점프슛, 2:2 플레이 등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대비해야 했다. 그는 폴과 함께 팀을 계속해서 성장시켰고 2008년에는 호네츠가 56승을 기록하며 팀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패배하고 만다.

 

데이비드 웨스트의 우승을 향한 이적

계속해서 폴과 함께 우승을 향해 도전했지만 계속 실패하였고 호네츠 구단의 매각과 구단주 교체 등으로 팀은 혼란스러워졌고 2011년 팀의 정신적 지주인 크리스 폴이 클리퍼스로 이적하자 데이비드 웨스트도 호넷츠에서 떠나게 된다. 이때부터 웨스트는 우승을 위한 이적을 거듭하게 된다. 우선 폴 조지, 로이 히버트가 뛰던 동부의 강호 인디애나로 이적했고 2013년부터 2년 연속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서부지구 시절 늘 던컨이나 코비의 벽에 무너졌다면 동부에서는 르브론 제임스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2년 연속 마이애미 히트와 붙어 사투를 벌였지만 그 벽을 넘어설 수 없었고 다음 시즌 올림픽을 대비한 연습경기에서 폴 조지가 큰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고 만다. 에이스를 잃어버린 인디애나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실패하게 되자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웨스트는 다시 팀을 떠나게 된다.

 

그가 정한 다음 팀은 카와이 레너드, 팀 던컨, 라마커스 알드리지가 있던 샌안토니오 스퍼스였는데 흥미로운 점은 그가 최저 연봉으로 입단했다는 것이다. 인디애나에서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파격적인 조건으로 재계약 제의를 했었지만 그가 원한 것은 오직 우승뿐이었기에 돈을 포기하고 샌안토니오에 합류했던 것이다. 게다가 주전이 아닌 벤치멤버로 뛰게 될 것을 알고도 계약을 맺었다. 그는 우승에 대한 간절한 열망으로 벤치에서 던컨과 알드리지를 받치는 역할을 맡으며 키 식스맨으로 활약한다. 하지만 팀이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탈락하게 되자 다시 이적을 결심한다.

 

마침내 이뤄낸 두 번의 우승

그의 마지막 행선지가 된 팀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였다. 워리어스는 그가 합류하는 2016-17 시즌 케빈 듀란트를 영입하며 NBA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팀을 만들었다. 그의 워리어스에서 샌안토니오와 마찬가지로 벤치에서 10분 남짓한 시간만 출전했는데 이제 많은 득점이나 리바운드를 잡을 수는 없었지만 여전한 패싱 센스와 확실한 스크린으로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동료들의 득점 기회를 만드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큰 역할을 해줬고 동료들이 흥분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들을 다독이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 벤치와 락커룸의 리더였다.

이 시즌 결국 팀은 모두의 예상대로 NBA 파이널에 진출했고 클리블랜드를 맞아 4차전만 내주며 4승 1패로 우승을 차지한다. 그의 간절한 꿈이 결국 이루어진 순간이다. 그런데 다음 해에도 팀은 다시 NBA 파이널이 진출하게 된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상대는 클리블랜드, 그런데 경기 양상은 지난해와 비슷했다. 엄청난 공격을 퍼부으며 1차전 10점 차, 2차전 19점 차, 3차전 8점 차, 4차전 23점 차... 압도적인 승리였다. 워리어스가 클리블랜드를 스윕 하며 다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마치 칼 말론처럼 우승을 위해 거액의 돈을 포기하며 이적을 했고 주전 자리마저 포기할 정도로 간절했던 그는 뉴올리언스를 떠난 지 6년 만에 꿈을 이루어냈고 1년 만에 다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37세의 나이로 홀가분하게 은퇴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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