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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 밀러:왕은 자신의 왕국을 버리지 않는다

by 이니웍스 2022. 1. 22.

3점 슛으로 스타가 되다

레지 밀러는 신장 201cm에 체중이 90kg이 나가지 않은 NBA에서 흔하지 않은 몸을 가진 선수였다. 이 선수를 1987년 트래프트에서 인디애나가 지명하자 팬들은 심한 야유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레지 밀러는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까지 오른 레전드가 된다. 이렇게 마른 레지 밀러가 NBA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무기는 바로 3점 슛이다. NBA에는 1979-80 시즌에 처음으로 3점 슛이 도입되는데 초창기에는 너무 생소한 룰이었고 기존 방식에 익숙한 선수들은 골대 가까이에서 확률 높은 슛을 던지는 것을 선호했다. 지금은 스테판 커리가 한 시즌 400개의 3점 슛을 성공시키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3점 슛은 공격에서 중요한 옵션이 아니었다. 레지 밀러는 이런 시대에 매년 300개의 3점을 던지는 전문 슈터 이미지를 구축했고 3점 슈터로서 게임 평균 18~20점을 기록하며 스타 반열에 오른다.

그는 통산 18.2득점 3 리바운드 3 어시스트 필드골 성공률 47%, 3점 슛 성공률 39.5%, 자유투 성공률 88.8%를 기록하는 정확한 슈팅을 가지고 있었고 고득점을 올리는 조던 같은 스타이은 아니었지만 조던만큼이나 찬스나 클러치 상황에 강해서 임팩트 있는 득점을 많이 성공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정규시즌보다는 플레이오프에 특히 강했고 1~3 쿼터보다는 4 쿼터에 강한 스타일이었고 강심장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곤 했다. 승부근성과 투지도 대단했고 리더십 있는 선수였기 때문에 스타일은 다르지만 조던과 비교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무기는 공을 잡기 전까지의 움직임이다. 공을 잡고있지 않을 때 찬스를 만들기 위해 수비를 벗겨내고 슛을 던지기 위한 찬스를 만들기 위해 쉴 새 없이 코트를 뛰어다녔고 팀 동료들은 스크린으로 그에게 기회를 제공해줬다. 이런 오프 더 볼 무브는 후에 리차드 해밀턴, 레이 앨런을 제외하면 비슷한 수준의 움직임을 보이는 선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강팀을 만들다

인디애나는 1976~1986년까지 플레이오프에 두 번밖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었지만 레지 밀러가 입단한 후 밀러가 3년 차가 되던 해인 1989년부터 2004년까지(1996년 제외)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며 강팀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아쉽게도 단 한차례도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팀의 중심에 밀러가 있었고 밀러를 중심으로 터프가이 같은 선수들이 영입되며 꾸준히 챔피언에 도전하는 팀이 되었다. 1994년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한 인디애나는 뉴욕 닉스와 만나 시리즈 전적 2:2인 상황이었다. 3 쿼터까지 12점 차로 지고 있었는데 레지 밀러가 4 쿼터에 팀이 기록한 35점 중 25점을 넣으며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7차전까지 가서 결국은 패배하고 만다.

1995년에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뉴욕 닉스를 만나게 되는데 1차전에서 인디애나는 16.9초를 남기고 6점을 뒤지고 있었다. 다들 승부가 정해졌다고 생각하던 찰나 밀러는 인바운드 패스를 받자마자 3점 슛을 성공시켰고 닉스의 인바운드 패스를 스틸해 바로 다시 3점슛을 넣었다. 그리고 닉스가 자유토 2개를 실패한 뒤 리바운드를 잡고 파울을 당해 얻은 자유투 2개까지 모두 성공시켜 8.9초 만에 8점을 성공시키며 팀을 승리로 이끈다. 이 장면을 두고 사람들은 밀러타임이라고 불렀으며 후에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의 티맥 타임 전까지 역사상 가장 짜릿한 장면 중 하나였다. 이 시리즈 역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고 올랜도 매직을 만나게 되는데 올랜도 매직과도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고 아쉽게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하게 된다.

1998년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하는데 이때 상대는 마이클 조던이 복귀한 시카고 불스였고 이 역시 7차전까지 끌고가게 된다. 결국 시카고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지만 조던의 1차 복귀 이후 7차전까지 간 시리즈는 이 페이서스와의 대결뿐이었다.

레지 밀러의 명예로운 은퇴

레지 밀러는 18년간 인디애나 페이서스에서만 뛰었는데 2004년 이 해가 마지막이라고 밝힌다 이때 나이는 39세 노장이었던 그는 이미 인디애나의 전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을 보이며 플레이오프로 인디애나를 이끌었고 1차전을 통과하며 다시 한번 우승에 도전한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패배하며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를 플레이오프에서 치르게 된다. 이 경기에서 27점을 기록했고 경기 종료 15초 전 레지 밀러를 교체하여 그를 위한 시간을 마련해주었고 상대팀 감독이었던 래리 브라운이 추가 타임아웃을 불러 밀러의 명예로운 은퇴를 기념할 수 있도록 했다. 동료 선수들과 상대 선수들 모든 관중들이 기립박수와 격려를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의 농구인생은 마무리 된다.

 

레지 밀러는 레이 앨런, 스테판 커리 이전의 최고의 3점 슈터였으며 누구보다 승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선수였다. 매 순간 찬스를 위해 끝없이 움직였으며 마지막까지 포기하는 일이 없는 선수였다.

그리고 우승을 위해 흔히 말하는 반지원정대 팀을 만드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어서 왕은 자신의 왕국을 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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