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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히버트:골밑만 지키는 올드스쿨 센터

by 이니웍스 2022. 2. 7.

센터 명가 조지타운

로이 히버트는 조지타운 예비학교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조지타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조지타운은 앨런 아이버슨 이전에는 센터를 장 육성하는 학교로 유명했는데 그 대표적인 선수들로는 패트릭 유잉, 알론조 모닝, 디켐베 무톰보 등이 있다. 입학 당시까지는 신장만 좋은 편이어서 1학년 평균 5.1 득점, 3.5 리바운드만을 기록하며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열심히 훈련한 끝에 로이 히버트는 2학년에는 평균 11.6 득점, 6.9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3학년에는 제프 그린과 함께 조지타운을 NCAA 토너먼트 4강까지 진출시키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데 특히 4강에서 패하긴 했지만 당시 대학리그를 점령하고 후에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되게 되는 오하이오 주립대의 그렉 오든과의 맞대결에서 우세한 모습을 보이며 스카우터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게 된다. 4학년까지 마치기로 결정한 그는 1년 더 조지타운에서 뛰고 드래프트를 신청하게 되는데 3학년 시절에 비해 크게 발전된 부분이 없어 평가가 조금 떨어진 상태로 2008년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다.

 

인디에나의 림 프로텍터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7번으로 토론토에 지명된 로이 히버트는 바로 인디애나로 트레이드 되는데 이때 토론토로 트레이드된 선수가 저메인 오닐이었다. 인디애나에서는 30세가 된 오닐을 버리고 노쇠해버린 제프 포스터를 대체할 선수로 히버트를 선택했고 데뷔 시즌에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구단에서 기대한 대로 천천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2011-12 시즌에는 평균 12.8 득점, 8.8 리바운드, 2 블록을 기록하며 올스타에 선발되기도 했지만 기대만큼의 모습은 아니었다. FA가 된 그를 포틀랜드에서 원했지만 이미 인사이드의 중심이 히버트였기에 그를 뺏길 수 없어 다소 비싼 금액에 재계약하게 된다. 12-13 시즌 초반에는 수비에서만 제 몫을 할 뿐 공격에서는 기여하지 못하다가 시즌 후반기에 평균 득점이 6점 이상 끌어올리며 팀의 동부지구 3위 안착에 기여한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애틀랜타 호크스를 꺾고 뉴욕 닉스를 상대로 3차전과 6차전에 더블더블을 기록하기도 했고 지난해 수비왕에 오른 타이슨 챈들러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카멜로 앤서니의 덩크를 블록 하며 최고의 활약을 하며 팀의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을 돕는다.

상대는 마이애미 히트였는데 히버트는 본인에 비해 사이즈가 낮은 마이애미의 골밑을 유린했고 수비에서는 페인트존을 철저하게 지켜냈다. 시리즈는 마이애미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되었지만 히버트의 대단한 활약은 큰 이슈로 남았다.

 

로이 히버트의 급격한 몰락

그러나 다음 시즌 왜인지 지난 시즌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리바운드에서도 4.6개를 기록함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하고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에 팀을 비난하는 인터뷰를 하며 팀의 분위기를 해치게 된다. 그리고 꾸준히 인터뷰에서 팀을 비난하며 팬들의 원성을 사게된다. 문제는 팀 분위기를 해치지만 팀의 승리에 기여하기만 해도 좋을 텐데 경기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후 경기에서 배제되기 시작한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였고 세미파이널에서 조금 살아났지만 지난해 정도의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는 다음 시즌 10.6 득점, 7.1 리바운드, 1.6 블록에 야투율은 44.8%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결국 팀에서는 그의 연봉에 부담을 느껴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트레이드시켜버린다. 하지만 레이커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감을 보여주는데 실패했고 당연히 재계약에도 실패한다. 16-17 시즌 샬럿 호네츠와 계약해 개막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기대치를 높였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 부상으로 실려나가며 그는 존재감 없는 벤치멤버로 전락해 밀워키와 덴버로 트레이드되었고 결국 은퇴를 하고 만다.

 

그가 인사이드에 있을 때 상대의 슛 성공률이 10%이상 차이가 날 만큼 대단한 수비력을 보여준 선수였고 그를 상대하는 팀은 골밑슛 시도보다는 중. 장거리 슛의 비율이 15%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이렇게 인사이드에서 팀의 수비를 책임지던 그는 현대 농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며 기량이 급격하게 하락한다. 그는 좋은 사이즈를 가졌지만 기동력이 떨어졌기에 헬프 디펜스에는 약할 수밖에 없었고 원래 스타일도 골밑에 버티고 서서 오는 상대를 저지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활용도가 떨어졌다. 대인 수비만을 하던 8~90년대에 나타났다면 무톰보 같은 수비형 센터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겠지만 그가 활약하던 시기는 2010년 초반이었고 그는 본인의 스타일을 바꿀만한 다재다능함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결국 기대 속에 데뷔한 신인은 31세의 이른 나이로 리그에서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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