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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도허티:클리블랜드 중흥기의 시작

by 이니웍스 2022. 2. 11.

1라운드 1순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출신의 브래드 도허티는 1986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번으로 클리블랜드에 지명되며 NBA에 등장한다. 이해에 클리블랜드는 상위픽을 여러 개 가지고 있어 여러 명의 선수를 한 번에 영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GM이었던 웨인 엠브리가 이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모든 선수들이 NBA 역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임팩트를 가진 선수들로 성장하며 클리블랜드가 80년대 후바에서 90년대 중반까지 중흥기를 맞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엠브리의 선택을 받은 선수들은 1라운드 1순위 브래드 도허티, 1라운드 8순위의 론 하퍼, 2라운드 5순위의 쟈니 뉴먼, 그리고 댈러스와의 트레이드로 얻은 마크 프라이스까지 한 번에 얻으며 레니 윌킨스 감독에게 루키들을 맡긴다. 레니 윌킨스 감독의 트레이닝을 받은 선수들은 시즌이 시작되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도허티와 하퍼, 그리고 전년도에 입단했지만 부상으로 뛰지 못했던 존 윌리엄스는 스타팅으로 맹활약했고 도허티는 15.7 득점, 하퍼는 22.9 득점, 윌리엄스는 14.6 득점을 기록하며 올 루키팀에 선발된다. 뉴먼과 프라이스는 아직 벤치에서 실력을 기르고 있는 중이었다.

 

클리블랜드의 3총사

2년 차가 되자 주전 포인트가드였던 존 배글리가 팀을 떠나며 프라이스가 주전 포인트가드로 낙점 이때부터 브래드 도허티와의 콤비 플레이는 빛을 보기 시작한다. 도허티는 두 번째 시즌 18.7 득점, 8.4 리바운드, 4.2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인사이드에서의 존재감과 대단한 패싱 센스를 선보였고 프라이스는 정확한 슈팅과 픽 앤 롤, 과감한 돌파 등으로 득점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래리 낸스는 19.1 득점, 론 하퍼도 15.4 득점에 4.9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주전 4명이 모두 올스타급의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다.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 도허티, 프라이스, 하퍼의 성장과 베테랑 낸스의 공격력은 팀을 계속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며 클리블랜드를 동부지구의 강팀으로 만들었다.

89-90 시즌에는 하퍼를 데니 페리와 트레이드해버렸고 도허티는 등 부상으로 40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평균 16.8 득점, 9.1 리바운드, 3.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해주며 플레이오프에 진출에 힘을 보탰다. 90-91 시즌에는 프라이스가 부상으로 빠지며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하지만 이 해부터 도허티는 완성된 기량을 보이며 21.6 득점, 10.9 리바운드, 3.3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엘리트 빅맨의 상징 같은 20 득점, 10 리바운드를 세 시즌 연속으로 기록하게 된다. 그는 이런 꾸준한 활약으로 샤킬 오닐이 데뷔하기 전까지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패트릭 유잉 다음가는 리그 정상급의 센터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도허티는 운동 능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다양한 슛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부드러운 스텝과 마치 가드 같은 시야로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다른 선수들에게 좋은 찬스를 만들어주는 선수였다. 그리고 도허티의 블록에서의 약점은 통산 포워드 부문 블록 1위를 차지했던 래리 낸스가 메꿔주었고 프라이스의 꾸준한 어시스트와 외곽의 지원까지 갖추어져 있었기에 어떤 팀도 클리블랜드를 쉽게 꺾기는 어려웠다.

이후 번번이 시카고에게 패하며 탈락하긴 했지만 꾸준히 플레이오프에서 정규시즌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올리며 선전했다. 그러다 1993-94 시즌 조던이 1차 은퇴를 하며 그들에게 파이널로 갈 기회가 찾아오는 듯했지만 도허티는 다시 등 부상으로 50경기에 결장하고 만다.

브래드 도허티 부상에 무릎 꿇다

브래드 도허티는 1994년 2월 중순 프랜차이즈 통산 최다 득점 신기록을 세운 도허티는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등 통증의 원인을 찾게 된다. 검사 결과는 치명적인 수준의 허리 디스크로 즉시 수술이 필요한 수준이었고 수술 후에도 농구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게 된다. 그의 나이 고작 28세, 일반적으로 다른 선수들은 최전성기를 맞을 나이에 어쩔 수 없이 은퇴를 하게 된다. 그의 갑작스러운 은퇴와 더불어 래리 낸스까지 부상으로 은퇴하며 갑자기 전력이 급격히 낮아진 클리블랜드는 이때부터 성적이 하락하며 결국 1995년 리빌딩을 선언하게 된다. 

 

브래드 도허티는 우승 경험도 없고 경력이 8 시즌밖에 되지 않지만 당시 팀 통산 리바운드 1위, 득점/야투성공률/출장시간 2위, 자유투 시도 3위 평균 득점/평균 어시스트 5위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톱 10에 들었고 프라이스와 함께 패스하는 센터와 득점하는 포인트가드의 이색적인 조합의 농구를 선보였다. 떨어지는 운동능력을 동료들과 함께 메꿔주며 클리블랜드를 강팀으로 만들며 팀의 중흥기를 이끌었고 압도적인 임팩트는 없었지만 깔끔하고 매력적인 스타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비록 이른 은퇴였지만 구단에서는 그의 등번호인 4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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