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브랜든 로이:부상으로 추락한 신인왕

by 이니웍스 2022. 2. 8.

신인왕 브랜든 로이

브랜든 로이는 워싱턴 주의 시애틀 출신으로 2002년 워싱턴 대학교에 입학하여 워싱턴 허스키스 소속으로 대학무대에서 선수도 활동하게 된다. 그는 여느 선수들처럼 얼리 드래프트가 아닌 4년 동안 대학무대에서 기량을 갈고닦으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집중했고 그 결과 4학년 때 Pac-10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과 그의 등번호가 대학팀에서 영구 결번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드래프트 당시에 로이는 이미 NBA에서 통할만한 완성형 선수로 즉시전력감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더 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뒤따랐다고 한다. 드래프트에서 6번으로 미네소타에 지명된 그는 직후 포틀랜드에 지명된 랜디 포이와 트레이드되어 포틀랜드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포틀랜드는 2000년대 초반 문제아 같은 선수들 투성이인 팀이어서 Jail Blazers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암흑기에 빠져 있었고 05-06 시즌 21승 61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구단에서는 이미지와 성적 개선을 위해 우선 2006년 시카고에 지명된 라마커스 알드리지를 트레이드로 영입하고 두 번의 트레이드를 통해 브랜든 로이를 미네소타에서 데려왔다. 로이는 고향인 시애틀 슈퍼소닉스와의 경기로 데뷔하게 되는데 이 경기에서 20 득점을 올리며 팀 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후 16.8 득점 4.4 리바운드 4.0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부상으로 25경기를 결장하긴 했지만 훌륭하게 루키 시즌을 보내고 신인왕까지 차지하게 된다.

당시 포틀랜드의 에이스는 잭 랜돌프였는데 포틀랜드에서의 그는 성의없는 수비와 이기적인 마인드, 철없는 행동으로 제일 블레이저스의 행동대장처럼 여기며 욕을 먹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문신하나 없는 성실하고 기본기가 탄탄한 신인의 등장에 팬들의 관심은 랜돌프에서 로이, 알드리지에게로 넘어갔고 랜돌프는 뉴욕으로 이적하게 된다.

 

올스타

07-08 시즌 랜돌프가 없어진 팀에는 로이와 알드리지를 중심으로 팀을 꾸려가려 했고 거기에 드래프트 1 순위로 대학 최대어였던 그렉 오든을 선발하게 된다. 오든은 대학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였고 역대급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았던 선수였기에 로이와 포틀랜드의 앞날은 밝게 빛나는 듯했지만 오든은 시즌 시작 전 무릎 수술로 1 시즌을 통으로 날리게 된다. 그럼에도 로이는 한 단계 발전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데뷔 2년 만에 올스타에 선발되었고 팀도 한때 13연승을 달성하며 승승장구했다. 팀 성적은 41승으로 5할 승률을 기록하며 그의 데뷔 전보다 두배 가량 상승했다. 이 모든 것을 그렉 오든 없이 해냈다.

다음 시즌인 08-09 시즌에도 올스타에 선발되었고 평균 기록은 22.4 득점, 4.7 리바운드, 5.1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해 올 NBA 세컨드 팀에 선정되었는데 퍼스트 팀에 코비 브라이언트와 드웨인 웨이드가 있었으니 사실상 슈팅가드 중 세 번째 선수라는 뜻으로 데뷔 3년 만에 이 둘을 잇는 슈팅가드라고 인정받게 된 것이었다. 이 시즌 로이는 52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프랜차이즈 기록인 10개의 스틸을 기록하며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포틀랜드는 54승 28패를 기록하며 오랜만에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했고 휴스턴에게 패하긴 했지만 성공적으로 시즌을 치렀고 매년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팬들의 기대는 점점 높아져갔다. 

09-10 시즌 전 로이의 그동안의 활약에 포틀랜드는 맥시멈 계약으로 보답했고 다시 코트 위를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3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4월에 무릎 부상을 당하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팀이 전체적으로 부상에 시달리던 시기라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너무 이른 추락

09-10 시즌을 마치고 10-11 시즌이 시작되었는데 시즌 초 브랜든 로이의 무릎에서 이상징후가 발견된다. 대학시절부터 그를 괴롭히던 시한폭탄 같던 무릎 문제가 드디어 터져버렸고 이로 인해 예전 같은 플레이를 보여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반대쪽 무릎에도 문제가 발생하며 양쪽 무릎의 연골이 완전히 마모되어버리고 만다. 이때 담당 의사가 세 개의 선택지를 제시했다고 한다.

 

1. 연습시간을 최소화 하기

2. 시즌의 65~75경기정도를 벤치에서 출전하기

3. 몸이 좋아지길 기도하기

 

담당의사는 이렇게 그의 출전시간을 제한해도 그가 1~2년 정도밖에 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년도까지 3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된 선수가 한순간 벤치멤버로 원래의 능력을 쓰지도 못하는 채 선수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은 충격을 받았고 브랜든 로이는 벤치를 지키며 알드리지가 팀의 중심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자 댈러스를 상대로 3차전이었던 홈경기에서 16점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보탬이 되었고 4차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결국 5, 6차전을 패하게 되고 댈러스는 그 시즌 우승을 차지하게 되지만 그런 댈러스를 상대로 로이는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보여줬다.

이 시즌 후 결국 브랜든 로이의 무릎은 더 이상 선수로서가 문제가 아니라 일상생활조차 지장을 줄 정도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의 병명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퇴행성 관절염이라는 충격적인 소견이 나오게 된다. 퇴행성 관절염 3기였는데 4기가 되면 인공관절 수술이 필수일 정도로 일반인 기준에서도 엉망인 상태였던 것이다. 로이는 어쩔 수 없이 은퇴를 선언하지만 그럼에도 농구에 여전히 미련이 남아 12-13 시즌 미네소타와 계약을 맺고 복귀를 시도하지만 5 경기만에 방출되고 만다. 

브랜든 로이는 코비 브라이언트나 드웨인 웨이드처럼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4년간 대학에서 갈고닦은 경험과 기본기가 좋은 선수였고 빠르지는 않아도 노련한 스텝을 이용한 돌파나 점프슛 모두가 가능한 선수였다. 넓은 코트비전과 높은 BQ 그리고 이타적인 선수였기에 포인트 가드까지 볼 수 있는 만능형 선수였다. 비록 팀의 그렉 오든과 같이 양다리의 길이가 달라 발생한 부상으로 짧은 선수생활을 했지만 매 경기 최선을 다한 플레이를 했고 엉망이었던 팀을 플레이오프로 끌어올린 그의 헌신에 대한 보답으로 구단에서도 영구결번은 아니지만 7번을 다른 선수에게 배정하지 않고 영구결번처럼 취급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포틀랜드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