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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스미스:이면계약 사건과 떠돌이 생활

by 이니웍스 2022. 2. 6.

1라운드 1순위

조 스미스는 NBA에 잊을 수 없는 기록을 남긴 채 떠돌다 사라져 버린 전 NBA 선수이다. 스미스는 메릴랜드 대학 출신으로 1995년 1라운드 1번으로 골든스테이트에 드래프트 되었다. 그는 대학시절 평균 20 득점, 10.6 리바운드, 2.9 블록을 기록한 피워 포워드 겸 센터였는데 95년 드래프트에 나온 미래의 NBA를 대표하게 될 포워드 자원들인 케빈 가넷, 안토니오 맥다이스, 라쉬드 월러스, 커트 토마스 등을 모두 제치고 1순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드래프트 순번도 그의 실력도 아니라 돈이었다. 당시 90년대에는 마이클 조던과 드림팀 등의 인기로 NBA가 전 세계의 관심을 받으며 수익이 급격하게 증가한 시기로 그 수익이 선수들의 연봉에도 영향을 주다 보니 고액 연봉자들이 많이 증가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베테랑이 아닌 신인선수들도 고액 연봉을 요구했고 대표적인 사건이 1994년 퍼듀대학교 출신의 글렌 로빈슨이 밀워키 벅스에 계약기간 10년+총액 1억 달러 계약을 요구한 일이다. 로빈슨은 결국 감독이 검증되지 않은 선수에게 1억 달러를 줄 수 없다고 못 박으며 결국 계약 내용을 수정해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로빈슨 계약건의 1년 전 샬럿 호네츠의 래리 존슨도 8천4백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하며 다른 선수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자 NBA에서는 샐러리캡 규정을 바꾸게 되는데 내용은 신인선수의 계약금에 상한선을 걸어버리며 무분별한 계약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이렇게 규정이 바뀌게 될지 모르고 거액 계약을 꿈꾸며 졸업 전 드래프트 참가 신청을 했지만 변경된 규정으로 인해 전년도 데뷔한 선배들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받았고 3년간 소속팀에서 의무적으로 뛰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루키 시절 15.3 득점, 8.7 리바운드, 1 스틸, 1블록을 기록하며 실력을 보여줬고 2년 차에는 18.7 득점, 8.5 리바운드, 1.1 블록을 기록하며 1순위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가넷, 마버리와 함께하다

1998년 FA가 된 스미스는 하필이면 그 해에 선수노조와 NBA간의 갈등으로 인한 직장폐쇄로 모든 계약이 묶여버리게 되며 그가 꿈꾸던 규모의 계약은 맺지 못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던 미네소타와 직장폐쇄가 끝나자 바로 계약을 맺게 된다. 미네소타 팬들은 그리 만족할 수준의 계약도 아님에도 수준급 포워드가 합류한다고 하니 다들 환영했는데 미네소타가 워낙 스몰마켓에 강팀도 아니었고 돈을 많이 쓰는 구단도 아니었기에 선수 수급이 신통치 않았기에 그의 영입이 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98-99 시즌 골든스테이트 시절보다 떨어진 기록을 내긴 했으나 13.7 득점에 8.2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도 경우에 따라서 스몰포워드에서 센터까지의 역할을 맡으며 가넷의 도우미 역할을 하며 팀에서 충실하게 포스트를 지켰다.

 

밝혀져버린 진실

2000년 9월 NBA가 조 스미스가 미네소타와 이면계약을 맺은 사실을 밝혀냈는데 내용은 미네소타에 선수들이 오려하지 않자 구단에서 스미스 측에 1년짜리 단기 계약을 세 시즌으로 쪼개서 맺고 계약이 마무리되고 네 번째 시즌에 고액의 장기 계약으로 부족했던 연봉을 메꿔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스미스의 에이전트이자 구단과 밀접한 관계였던 에릭 프레셔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관계자들은 스미스와 미네소타의 계약 당시 스미스 정도의 유망주가 돈을 밝히는 에이전트와, 부모가 있음에도 적은 액수의 계약을 한 점을 의심했었다고 한다. 미네소타는 자금력이 부족했고 샐러리 캡의 상한선도 넘긴 상태라 그에게 합법적으로 원하는 금액을 지불할 수 없었기에 세 번으로 나누어 계약을 했고 래리 버드 조항에 따라 한 팀에서 3년을 뛴 선수는 샐러리 캡에 상관없이 고액의 계약도 가능했기 때문에 그것만 믿고 스미스는 상대적으로 헐값에 미네소타와 계약을 했던 것이었다.

 

이후 조 스미스는 미네소타와의 3년 계약을 전부 인정받지 못하며 래리 버드 조항을 적용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미네소타는 2000년부터 5년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박탈당하였으며 350만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된다. 그리고 구단주와 단장은 1년간 미네소타의 훈련 및 시즌 경기를 참관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업무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스미스의 에이전트도 5만 7천 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했고 6개월간 자격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미네소타는 이때부터 신인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고 FA 영입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며 가넷 혼자 애처롭게 싸워나가고 있었다.

 

떠돌이 조 스미스

이 사건이 터진 후 조 스미스는 한때 NBA에서 제명되기도 했었지만 중재협의회의 결정으로 선수 자격이 회복되어 2000년 디트로이트와 1년 계약을 맺게된다. 신용이 바닥으로 떨어진 그는 몸값도 초라해졌고 동시에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만다. 1년 후 미네소타에 복귀했지만 이미 그 시절의 기량은 사라져 버린 터라 팀에서는 2003년 밀워키로 그를 트레이드했고 이후 2006년까지 밀워키에서 뛴 스미스는 덴버 너기츠,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즈, 시카고 불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등을 전전하며 뛰다가 은퇴하게 된다. 그는 16 시즌을 NBA에서 뛰며 1,030경기를 뛰었는데 12팀을 떠돌았고 미네소타나 클리블랜드처럼 떠났다가 복귀한 것까지 치면 이적만 15번이나 하게 된다.

데뷔 후 스몰포워드를 보기에는 발이 느리고 파워포워드를 보기에는 파워가 부족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데뷔 초의 모습을 보면 그래도 잘 적응할 수 있을것처럼 보였다. 이면계약 파동 같은 사건이 없었다면 대학시절 그 누구도 그의 상대하지 못하는 수준의 선수가 NBA에서 어떤 결말을 보여줬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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