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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탁스:노력으로 성공을 쟁취하다

by 이니웍스 2022. 2. 11.

불량 청소년

오클라호마 출신인 존 스탁스는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며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싸움에 끼어드는 생활을 하는 흔히 말하는 불량 청소년이었다. 주위에도 질 나쁜 아이로 낙인이 찍혀있었는데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나에게는 네가 유일한 희망이란다. 내 희망이 무너지면 난 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고 그에게 얘기했고 이 말을 들은 스탁스는 학업에 전념하며 농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가 후에 아동학대 방지위원회에서 활동하거나 불우한 환경의 아동들을 위해 기부한 것도 본인의 청소년기에 있던 아픈 기억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대학시절 4번이나 학교를 옮겨 다니며 오클라호마 주립대에서 졸업하게 된다. 이렇게 학교를 옮겨 다니게 된 것은 본인의 비행 탓이었다고 하는데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완전히 과거를 청산한 상태는 아니었고 남의 스테레오를 훔치다가 걸려서 유치장에 5일간 수감되기도 했고, 기숙사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다가 걸려서 쫓겨나기도 했다. 

어쨌든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긴 했지만 그는 드래프트에 오르지도 못했는데 운 좋게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입단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팀에는 미치 리치몬드가 있다 보니 36경기에 백업으로 평균 8.8분 출전하며 4.1 득점이라는 초라한 성적만 남기고 방출당한다. 이후 CBA에서 뛰기도 하고 소규모 하부리그인 WBL에서도 활동하다 우연히 1990년 뉴욕 닉스 스카우터의 눈에 띄게 되어 뉴욕 닉스에 입단하게 된다.

 

우연히 기회를 얻게 된 존 스탁스

닉스에서 존 스탁스는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방출당하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즌 초 연습경기 도중에 패트릭 유잉을 앞에 두고 덩크를 시도하다 블록을 당하며 무릎 부상을 입게 된다. 이 부상이 오히려 그에게 기회가 되었는데 NBA 규정상 연습 도중 부상당한 선수를 당장 방출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로스터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의 부상이 회복될 때쯤 닉스의 후보 슈팅가드가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스탁스에게 출전 기회가 주어진다. 그는 평균 19분 정도 뛰며 7.6 득점, 3.3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득점과 어시스트보다 끈질긴 수비와 승부근성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주며 다음 시즌 식스맨으로 전경기에 출전하며 13.9 득점을 올리게 된다. 이 시즌 닉스는 디비전 1위로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했으나 시카고에게 패했다. 다음 시즌에는 51경기에 선발로 출장하며 17.5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주축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 잡게 되고 지독할 정도로 끈질긴 수비로 올 디펜스 세컨드 팀에 선정되기도 한다.

93년 플레이오프에서는 동부지구에서 뉴욕과 대표적인 라이벌인 인디애나와 맞붙어 승리하게 되지만 3차전에서 레지 밀러의 트래쉬 토킹과 할리우드 액션에 폭발해 밀러를 머리로 들이받고 퇴장당하기도 한다. 끈질기고 끈끈한 수비를 자랑하던 그였지만 막상 상대 수비의 심리전에는 약했던 모습이 드러났다. 어쨌든 시리즈는 닉스가 가져갔고 불스와 대결하게 되지만 패하게 되지만 경기에서 조던에 대한 악착같은 수비와 공격에서 베이스라인을 돌파하여 호레이스 그랜트와 마이클 조던을 앞에 두고 터트린 덩크슛으로 큰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93-94 시즌 닉스는 파이널에 올라 휴스턴과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는데 6차전까지 19.3 득점을 하며 유잉과 함께 팀을 끌고 갔지만 7차전에서 3점 슛 11개를 전부 실패하며 파이널 패배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게 된다.

이후 1996-97 시즌부터는 앨런 휴스턴에게 주전 자리를 넘겨주고 식스맨으로 활약하는데 출장시간이 줄었음에도 오히려 전 시즌보다 득점이 늘어나며 올해의 식스맨 상을 수상한다. 이후에도 벤치에서 출전해 에너지 있는 플레이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언더사이즈 SG

98-99 시즌에는 라트렐 스프리웰과의 트레이드에 엮여 그가 데뷔했던 팀인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이적하며 뉴욕을 떠나게 된다. 워리어스에서도 두 시즌 간 주전으로 뛰며 괜찮은 활약을 보이긴 했지만 스탁스는 30세 중반이 가까워지며  그는 공격에서는 비슷한 기록을 냈지만 장점이었던 수비력이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99-00 시즌 중반 시카고로 트레이드되지만 네 경기만에 유니폼을 벗었고 이후 유타 재즈와 계약하고 2년간 더 뛴 후 은퇴한다.

 

존 스탁스는 스스로 공격을 만드는 능력은 부족했고 외곽에서 득점을 지원하는 타입의 선수였다. 확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NBA 역사에서 최초로 시즌 200개의 3점 슛을 성공시킨 선수기도 했다. 하지만 슛의 기복이 상당히 심해서 잘 들어가는 날에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끔찍한 수준이기도 했다.

운동능력에 비해 공격 옵션이 다양하지 않았고 돌파력도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다 보니 자유투를 얻어내는 능력도 뛰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195cm라도 되어있는 그의 신장도 실제 키는 188cm 안팎일 것이라고 예상되는데 키 때문인지 리바운드에도 딱히 재능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외곽에서 슛이 안 들어가면 공격에서 기여도가 뚝 떨어져 뉴욕의 공격 패턴이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탁스는 전성기 시절 시카고 불스와의 대결에서 신장과 체중의 열세에도 마이클 조던을 찰거머리같이 따라붙으며 엄청났던 순간 스피드와 핸드 체킹으로 그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그리고 이런 수비력으로 조던을 수비 밀집 지역으로 몰아넣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상대의 사이즈와 관계없이 적극적으로 달라붙어 공격 성공률을 낮추는 수비의 달인이었다.

 

존 스탁스는 불우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4개의 대학을 전전하다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NBA에 등장했다가 방출되고 하부리그를 전전하다 뉴욕이라는 빅마켓에서 운 좋게 살아남는다. 그리고 악착같은 노력으로 주전 가드 자리를 차지하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선수였고 마이클 조던과 매치업 되어 그에게 처참하게 당하긴 했지만 끝까지 달려드는 끈질기고 근성 있는 모습의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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