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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가넷:The Big Ticket

by 이니웍스 2022. 1. 20.

빼빼 마른 고졸 루키

케빈 가넷은 1976년 이후 20년 만에 고등학교만 마치고 NBA에 드래프트 된 선수이다. 워크아웃에서 탁월한 운동능력으로 주목을 받았고 고등학교 시절에도 MCDonald's All-American Game에 출전해 18 득점 11 리바운드 4 어시스트 3블록을 기록하며 전국적인 관심을 받던 선수였다. 하지만 NBA 무대에서는 그의 몸무게가 발목을 잡았는데 211cm의 장신임에도 100kg이 안 되는 몸무게 때문에 자신의 위치가 애매했다. 파워포워드를 보기에는 파워가 너무 부족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데뷔 초에는 중용되지 못했는데 감독이 플립 손더스로 교체되며 가넷은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게 된다.

그는 데뷔 초기에는 스몰포워드로 자주 출장하였고 올스타에 출장할 정도로 성장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스몰포워드로 자주 출장하였고 마이클 조던과 매치업되는 일도 많았다.) 스몰포워드인 그는 스타였지만 팀은 그의 신장을 생각하면 골 밑에서 뛰는 게 훨씬 위력적이었기 때문에 팀에서는 그를 파워포워드로 출전시켰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파워는 문제였고 게임 후반에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며 공격성공률도 떨어지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었다.

 

수비형 빅맨과 우승

케빈 가넷은 신장을 생각하면 사기에 가까울 정도로 빨랐지만 스몰포워드로서는 상대를 따라잡을 정도로 사이드 스텝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탄탄한 기본기와 센스로 커버하며 매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파워포워드로서의 가넷은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수였다. 당시 1:1이 기본이었는데 수비에서 지독한 트래쉬 토킹과 높이로 상대를 괴롭혔고 파워도 끈질긴 승부욕과 훈련 워낙 탄탄했던 기본기를 바탕으로 문제를 극복해내며 리그 최고 선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가넷은 미네소타에서 스테판 마버리와 호흡을 맞추며 팀을 잘 이끌어갔지만 팀 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늘 좌절했고 그에 대한 비판은 모두 가넷에게 향했다. 하지만 스몰마켓이었던 미네소타 구단은 전력 보강이 매우 어려운 지경이었고 투자에 인색하기로 유명했다. 프런트의 무능함이 가넷에게는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그러다 2003-04 시즌에 샘 카셀과 라트렐 스프리웰을 트레이드로 데려오면서 미네소타는 힘을 내기 시작했고 이 시즌 가넷은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였을 뿐 이 두 선수가 다음 시즌 구단과 갈등을 일으키며 태업을 일삼았고 구단의 분위기를 망쳐놓게 된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던 가넷은 2007년 결국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가 성사되었고 여기에서 폴 피어스, 레이 앨런, 가넷이라는 역사상 최고의 Big 3가 탄생하게 된다.

 

가넷의 실력은 여전했지만 코트 어디서든 돌파와 슛이 가능한 두 선수와 함께 있으니 공격에 대한 부담이 줄기도 했고 그의 수비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수비형 빅맨으로 스타일을 변경한다. 이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보스턴의 골밑을 안정적으로 지켜주며 팀의 젊고 몸싸움에 강한 빅맨들을 잘 이끌며 팀을 안정화시킨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애틀랜타 호크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꺾으며 파이널에 진출해 로스엔젤레스 레이커스마저도 4:2로 제압하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다.

 

케빈 가넷 미네소타로 돌아가다

보스턴에서 4 시즌을 더 뛰며 챔피언에 도전했지만 우승에는 실패한 가넷은 2013년 보스턴이 리빌딩에 들어가며 폴 피어스와 함께 브루클린으로 트레이드되었다. 수비력은 여전했지만 노쇠화로 인해 득점은 한 자릿수로 줄었고 예전과 같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브루클린과 미네소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트레이드가 성사되는데 10년 넘게 뛰던 미네소타로 가넷이 복귀하게 된 것이다. 가넷이 코트에서 어떤 활약을 보이던 팬들은 환호했고 가넷은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뛰지는 못했지만 출장한 경기에서는 수비에서 제 몫을 해냈다. 그러나 더 이상 본인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인지 워낙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케빈 가넷은 2016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케빈 가넷은 어떤 이들에게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프로에 진출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선수로 어떤 이들에게는 악명 높은 트래쉬 토커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가넷이 고졸선수로 증명한 실력으로 인해서 코비 브라이언트,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르브론 제임스 등이 프로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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