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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웨버:부상으로 늦어진 전성기

by 이니웍스 2022. 2. 1.

미스터 타임아웃

크리스 웨버는 9살 때부터 농구를 시작해 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학교를 주 챔피언으로 만들었고 미시간 주의 Mr. Basketball에 선정되기도 한 미래가 밝은 소년이었다. 졸업 후 미시간 대학교로 진학하여 1학년에 바로 주전으로 뛰었으며 입단 동기인 주완 하워드, 제일런 로즈, 지미 킹, 레이 잭슨과 함께 NCAA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이들을 이들을 Fab5라고 칭했고 특히 이들 중 웨버는 큰 키에 빠른 스피드 넓은 시야, 긴 슛 레인지를 가진 선수였고 외모까지도 뛰어났기 때문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1학년 때 NCAA 파이널까지 진출하며 준우승을 이뤄냈고 2학년 때도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NCAA 토너먼트 노스캐롤라이나와의 경기 막판 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블팀이 붙자 당황해 타임아웃을 불렀는데 이미 미시간은 타임아웃을 다 써버린 상황이었다. 심판은 바로 웨버에게 테크니컬 파울이 선언했고 미시간 대학교는 경기에서 패하고 만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는 의미로 미스터 타임아웃이라고 불렀고 그의 농구인생 최악의 장면으로 기록됐다. 이 패배 이후 크리스 웨버는 2학년을 마치고 드래프트를 신청하게 된다.

그런데 2002년 Fab5 멤버들의 미시간 입학 과정에서 금품수수같은 부정행위가 발각되었고 이 결과 웨버의 미시간 대학교 시절 농구팀 기록이 삭제되어버렸다.

 

크리스 웨버의 화려한 데뷔

1993년 드래프트에 참가한 그는 1라운드 1번으로 올랜도 매직에 지명된다. 올랜도에는 전년도에 데뷔한 샤킬 오닐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강력한 인사이드를 구축하게 된 올랜도를 상상하며 환호했지만 웨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된 앤퍼니 하더웨이와 트레이드되게 된다. 워리어스에서 웨버는 신인시절 17.5 득점, 9.1 리바운드, 3.6 어시스트, 1.2 스틸, 2.2 블록슛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차지하게 된다. 큰 키에도 불구하고 가드처럼 드리블하고 패스하는 그는 필라델피아 시절 찰스 바클리의 키 큰 버전처럼 보였다. 하지만 감독과의 불화는 점점 심해졌는데 감독은 그를 센터처럼 활용하고 싶어했고 웨버는 좀 더 자유롭게 플레이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웨버는 슛 레인지가 길었던 선수였기에 다양한 위치에서 공격하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감독과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기 힘들었다. 감독은 웨버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웨버의 스트레스는 극심해져 갔다. 하지만 이 둘의 불화와 반대로 팀 성적은 좋았던 것이 아이러니하다. 결국 웨버는 잔여 계약 해지 옵션을 사용하며 워싱턴 불리츠로 팀을 옮기게 된다.

워싱턴에는 대학 동기인 주완 하워드가 있었고 게오르그 뮤레산이라는 센터도 있었기에 센터를 봐야하는 부담감도 없었고 워싱턴의 짐 라이넘 감독은 그에게 자유로운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하지만 부상이 문제였다. 이적 후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결장하게 되고 95-96 시즌 같은 부위 부상이 재발하며 15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한다. 엄청난 재능을 가진 선수였기에 부상으로 인한 이탈이 안타까웠지만 점점 본인의 다재다능한 모습을 되찾아갔다.

1996-97 시즌에는 모처럼 72경기를 소화하며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진출도 이뤄내게 되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쓰리핏 시절의 시카고 불스였다. 3패로 시리즈를 마감하긴 했지만 웨버는 플레이오프에서 20 득점, 10 리바운드, 4 어시스트 이상을 해내며 본인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다음 해에는 팀 성적은 비슷했으나 뉴저지 네츠에게 밀려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웨버는 시즌 후 트레이드되어 새크라멘토 킹스로 이적하게 된다.

 

모션 오펜스와 함께 시작된 전성기

크리스 웨버는 스몰마켓에 비인기 구단인 새크라멘토로 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킹스는 이 해에 팀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전력 보강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결과로 웨버를 비롯해 드래프트로 얻은 제이슨 윌리엄스와 유고 출신의 블라디 디박과 페자 스토아코비치 등 수준급 선수들이 영입되며 하위권을 맴돌던 시절의 킹스와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축시즌으로 시작된 첫 시즌에서 팀은 5할 승률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켰는데 특히 제이슨 윌리엄스와 웨버의  창의적이고 화려한 플레이에 팬들은 환호했다. 이때 팀은 모션 오펜스를 사용했는데 구성한 전원이 슛과 패스에 일가견 있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많은 하이라이트 장면을 만들어냈다. 웨버는 이 해 처음으로 리바운드 1위에 등극하기도 한다.

다음 시즌에 팀은 서부지구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성장해 있었고 웨버는 팀의 중심으로 평균 27.1 득점, 11.1리바운드, 4.2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 던컨과 All NBA 퍼스트팀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아쉽게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레이커스에 패배하였지만 여전히 경쟁력 있는 팀이었던 킹스는 다음 시즌 본격적으로 우승을 노리며 선수단 개편을 감행한다.

게임 리딩이 단점이었던 제이슨 윌리엄스를 보내고 퓨어 포인트가드 성향의 마이크 비비를 영입해 안정감을 더했고 페자 스토아코비치는 리그 최고 슈터로 성장해있었다. 블라디 디박, 덕 크리스티도 꾸준히 활약해주었다. 식스맨 바비 잭슨도 건재했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킹스의 우승을 점치기도 했다. 실제로 정규시즌 61승을 거두며 리그 전체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며 플레이오프에서 유타와 댈러스를 꺾으며 컨퍼런스 파이널로 향했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와 접전을 벌이게 되고 1차전은 내주었지만 2, 3차전을 따내며 우위를 가져왔다. 4차전에서 로버트 오리에게 역전 3점 슛을 허용하며 패하긴 했지만 다시 5차전은 승리한다. 그런데 6, 7차전 심판의 승부조작으로 인해 킹스의 우승은 물 건너가게 된다. 4차전에도 오심이 있었으며 6차전에는 심판이 시리즈의 흥행을 위해 게임을 7차전까지 가져가기 위해 고의적으로 레이커스를 밀어주는 파울 콜을 불었다.

안타깝게 시즌을 마쳤지만 02-03 시즌에도 여전한 위력을 보여주며 플레이오프에 올랐는데 댈러스와의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웨버가 경기 막판 무릎 부상을 당하고 만다. 이 부상으로 웨버는 운동능력의 거의 상실하게 된다.)

그런데 웨버가 부상으로 결장한 다음 시즌 킹스가 오히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브래드 밀러는 패스가 좋은 센터로 성장했고 특히 스토아코비치가 킹스의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의 해결사 역할을 맡으며 MVP급 활약을 선보였다. 시즌 막판 웨버가 돌아오며 팀에서는 웨버도 활용을 해야 했기에 방향성을 변화를 주려 했는데 이로 인해 스토아코비치의 역할이 축소되며 스토아코비치와 웨버는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막상 웨버는 운동능력을 거의 잃었고 수비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는 선수로 변해 있었다. 팀도 웨버 복귀 전 44승 15패를 기록하며 서부지구 1번 시드를 다투다가 웨버 복귀 후 11승 12패를 기록하며 4번시드로 떨어졌다. 

 

킹스의 영구결번 그리고 명예의 전당 헌액

크리스 웨버는 본인의 입지가 좁아진 것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고 동료들을 비판했다. 구단에서도 활용도가 없어진 고액 연봉자였던 웨버가 부담스러워졌고 결국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되게 된다. 하지만 필라델피아는 모든 것이 아이버슨에게 맞춰져있었기에 웨버의 떨어진 기량으로는 팀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 결국 06-07 시즌 도중 방출 당한다.

이후 디트로이트와 계약을 하여 괜찮은 활약을 보이며 플레이오프에도 올랐지만 클리블랜드에게 패하면 탈락하고 만다. 시즌 후 FA가 된 웨버는 데뷔했던 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계약하게 되는데 당시 워리어스는 런앤건 위주의 빠른 농구를 추구하던 현재의 웨버와는 맞지 않는 팀이었다. 돈 넬슨 감독이 9경기 중 8경기에 선발로 출장 시키기도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결국 은퇴를 선언한다.

 

크리스 웨버는 한때 던컨, 가넷과 함께 NBA 3대 파워포워드로 불렸으며 슛 레인지가 길었지만 골밑에서도 전투적인 플레이가 가능했던 선수, 뛰는 농구도 소화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빅맨이었지만 결국은 부상으로 인해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지 못했다. 우승을 이뤄내지 못해 던컨, 가넷 등에 비해 저평가받기도 하지만 그의 기량 자체를 낮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부상이 없었다면 아마도 많은 분야에서 NBA 통산 기록 상위권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선수였고 우승을 제외하면 리그에서 충분한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새크라멘토에서의 비록 그와 좋게 헤어지지는 않았지만 밀레니엄 킹스를 이끌며 팀의 전성기를 만들어준 웨버의 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고 웨버는 수많은 팬들과 팀 동료였던 블라디 디박, 덕 크리스트의 축하를 받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2021년 5월 아이제아 토마스의 지명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며 초라한 모습으로 은퇴했지만 환영받는 농구선수의 모습으로 기억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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