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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드 드렉슬러:The Glide

by 이니웍스 2022. 2. 10.

하킴 올라주원을 만나다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고향은 뉴올리언스지만 성장기를 휴스턴의 사우스 파크 지역에서 보낸 사실상 휴스턴 토박이에 가까운 선수였다. 그는 고등학교 입학 후 2학년에 농구부에서 탈락하기도 했었으나 3학년 때 크리스마스 경기에서 샤프트 타운 고등학교를 상대로 34 득점, 27 리바운드라는 충격적인 기록을 하며 대학 감독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휴스턴 인근의 텍사스 공과대학교, 뉴멕시코 주립대학교, 휴스턴 대학교에서 입단 제안이 왔는데 그는 가이 루이스 감독에 의해 고향 친구였던 마이클 영이라는 선수와 함께 휴스턴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런데 1년 후 나이지리아 출신의 하킴 올라주원이 대학에 들어오게 되며 먼 훗날 NBA에서 다시 만나게 될 이 콤비의 전설이 시작되게 된다. 올라주원은 아직 완성된 선수가 아니었기에 실력이 부족했기에 모제스 말론에게 농구를 배우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2학년 때부터는 드렉슬러와 함께 코트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득점을 했다. 이 두 콤비에게 휴스턴 포스트지의 Phi Slama Jama(속공과 덩크)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그들의 활약은 연일 화제가 된다. 휴스턴 대학교는 드렉슬러와 올라주원의 활약으로 NCAA 토너먼트 파이널까지 진출하기도 한다.

이후 드렉슬러가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며 이 콤비는 해체되고 드렉슬러는 1라운드 14번으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지명을 받게 된다. 

 

조던의 그늘에 가려진 클라이드 드렉슬러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루키 시절 백업으로 뛰며 평균 17.2분밖에 소화하지 못하였고 7.7 득점밖에 기록하지 못하며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년 차부터 주전으로 발탁되며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지난 시즌 7.7점이던 평균 득점은 17.2 점으로 상승했고 6 리바운드, 5.5 어시스트, 2.2 스틸을 기록하며 공. 수에서 다재다능한 선수임을 증명한다.

세 번째 시즌에는 올스타로 선정되며 은퇴할 때까지 총 10번의 올스타전에 출장하게 된다. 이런 드렉슬러의 성장과 함께 포틀랜드는 우승을 노릴 수 있을 정도의 강팀이 되어갔고 1990년에는 59승 23패를 기록하며 NBA 파이널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상대는 배드 보이즈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였고 1승밖에 따내지 못하며 준우승에 그치게 된다.

다음 해에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지만 매직 존슨의 레이커스를 만나 패배하고 만다. 이 패배 후 다음 시즌을 맞이한 드렉슬러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고 시즌 평균 25 득점, 6.6 리바운드, 6.7 어시스트, 1.8 스틸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올 NBA 퍼스트 팀에 선정된다. 팀도 플레이오프에서 하나, 둘 상대 팀을 꺾으며 다시 한번 NBA 파이널 진출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상대는 당시 최전성기의 기량을 뽐내던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였고 드렉슬러는 시리즈 평균 24.8 득점, 7.8 리바운드, 5.3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했지만 조던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던은 이 시리즈에서 평균 35.8 득점, 4.8 리바운드, 6.5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포틀랜드 수비진을 폭격했고 조던의 이런 활약으로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시카고에게 우승을 넘겨주게 된다. 드렉슬러는 마이클 조던보다는 분명히 한 수 아래임은 확실했다.

하지만 게임 리딩, 득점, 리바운드까지 전체적으로 뛰어난 만능에 가까운 선수였고 수비도 굉장히 훌륭했다. 특히 스틸이 뛰어난 훌륭한 수비수였지만 동시대에 같은 포지션의 마이클 조던이 있었고 존 스탁턴, 게리 페이튼 등이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수비력이 부각되지는 못했다. 리바운드와 외곽슛에서는 조던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부분에서 조던이 압도적인 기록을 세워나갔기에 늘 그와 비교를 당해야 했다. 드렉슬러는 90년대의 슈팅가드 중 NO.2 인 위대한 선수였지만 늘 조던 때문에 과소평가받는 선수기도 했다.

92-93 시즌부터 드렉슬러는 30세가 넘어가면서 기량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구단에게 우승권의 팀으로의 트레이드를 요청한다. 포틀랜드는 1995년 오티스 소프를 받는 조건으로 그를 휴스턴 로키츠로 트레이드하게 된다.

 

Phi Slama Jama 콤비의 재회

고향팀인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된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대학시절 콤비인 올라주원과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휴스턴은 포워드가 부족하고 가드진이 포화상태인 팀이었기에 쓸데없는 트레이드였다는 말을 듣게 된다. 실제로 트레이드 이후 승률이 5할에 그치며 드렉슬러 영입이 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게 된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드렉슬러가 평균 20.5 득점을 기록하고 올라주원을 받쳐주는 확실한 2 옵션으로 맹활약하자 이런 의견들은 모두 사라졌고 모두 드렉슬러의 가치를 인정하며 팀의 2연패를 기대하게 된다.

팬들의 기대대로 팀은 NBA 파이널까지 진출하게 되고 동부지구의 샤킬 오닐 앤퍼니 하더웨이가 이끄는 올랜도 매직을 상대하게 된다. 많은 전문가들은 올랜도의 우세를 점쳤는데, 올랜도가 휴스턴보다 훨씬 젊고 빠르고, 강했으며 마이클 조던이 복귀한 시카고를 꺾고 올라온 기세를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였다. 하지만 매 경기 박빙의 승부를 펼치긴 했지만 우승을 차지한 것은 휴스턴이었고 시리즈 전적은 4승 무패였다.

올라주원은 시리즈 평균 32.8 득점, 11.5 리바운드, 5.5 어시스트, 2 블록으로 오닐을 압도했고 드렉슬러는 젊은 하더웨이를 상대로 노련한 경기 운영을 보여주며 팀의 승리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올라주원이 파이널 MVP를 수상하였고 팀의 2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후 적지 않은 나이와 부상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계속 주전으로 활약했고 1998년 모교인 휴스턴 대학교의 감독직 제의를 받으며 은퇴를 하게 된다. 은퇴하던 해 드렉슬러의 성적은 평균 18.4 득점, 4.9 리바운드, 5.5 어시스트, 1.8 스틸로 아직 어느 팀에서든 주전으로 뛸 수 있는 기록을 냈지만 그는 미련 없이 코트를 떠난다.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우승권과는 거리가 있었던 포틀랜드를 이끌고 두 차례나 파이널 진출에 성공한 선수였고 동시대에 조던 외에는 상대가 없는 슈팅 가드였다. 그 이후에 슈팅 가드 포지션에서 그와 비교할만한 선수는 아직까지 코비 브라이언트, 앨런 아이버슨, 드웨인 웨이드 정도이며 그 위대한 활약으로 휴스턴 로키츠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두 팀에 영구결번이 되었으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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