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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맥그레이디:T-Mac Time

by 이니웍스 2022. 1. 20.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생계를 위해 NBA에 입성하다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는 야구선수가 꿈인 소년이었다. 하지만 집은 매우 가난했고 가난과 배고픔을 달래려 매일 공을 던졌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TV에서 페니 하더웨이의 경기를 보고 농구선수를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오번데일 고등학교로 진학해서는 학교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나 학교 교사와의 갈등으로 마운트 지온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된다. 마운트 지온 고등학교에서의 그는 97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뛰는 고교선수중 최고라는 평을 받았고 많은 대학에서 그를 탐냈지만 생계를 위해 고등학교를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다.

 

카터와의 이별과 수퍼스타의 탄생

전체 9위라는 좋은 순위로 지명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는 토론토 랩터스와 계약을 하게 된다. 당시 GM이었던 아이재이아 토마스는 "아직 맥그레이디는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몇년 후에는 엄청난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팀에는 덕 크리스티라는 주전 선수가 있었고 꽤나 좋은 활약을 보여줬기에 맥그레이디는 많은 시간을 코트밖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성적부진으로 디렐 워커 감독이 부치 카터로 교체되며 맥그레이디에게도 기회가 찾아온다. 카터 감독은 맥그레이디의 성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그를 도왔고, 자유투 코치와 인터뷰 카운슬러를 붙여주기도 했다. 맥그레이디는 이런 카터 감독을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많이 의지했지만 카터 감독 역시 성적부진으로 해고되면서 둘의 인연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련을 격으며 맥그레이디는 점점 성장했고 99-00 시즌부터는 주전으로 활약하게 된다. 플레이오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사촌이었던 빈스 카터의 그늘에서 점점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토론토는 빈스 카터의 팀이었고 맥그레이디는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맥그레이디는 동 티맥/서 코비 시대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맥그레이디는 함께 영입된 그랜트 힐이 시즌 아웃된 영향도 있지만 그 동안 빈스 카터에 가려진 2옵션이라는 위치에서 할 수 없던 모든 것을 코트 위에 쏟아내게 된다. 폭발적인 퍼포먼스로 기량발전상을 수상하며 올랜도를 플레이오프로 이끈다. 당시 기준으로 23세에 평균 32점을 득점하며 최연소 득점왕을 차지하였고 플레이오프에서 디트로이트에게 역전패하긴 했지만 그들을 탈락 직전까지 몰고갔었다.

맥그레이디는 203cm의 키에 윙스팬이 길어 같은 포지션 선수들과 비교해 우월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커리어 평균 실책이 3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안정적인 볼 핸들링도 가능했고 경기당 5~6개의 어시스트를 할 정도로 리딩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패싱 센스도 훌륭한 편이어서 상대에게는 까다로운 선수였다. 그리고 그의 최고의 무기였던 가속능력과 역대 최고로 평가받던 퍼스트 스텝을 바탕으로 외곽에서 한순간에 상대 수비를 뚫고 들어가 덩크나 레이업으로 마무리 하는 모습을 수도없이 보여줬다. 거기에 점프슛의 정확도도 엄청나서 붙으면 돌파 거리를 두면 슛을 쏘아대니 상대 수비에게는 1대1로는 쉽게 막을 수 없는 존재였다. 안정적인 점프와 긴 팔로 인해 슛의 타점이 높았고 슛 레인지도 길어 내 외곽에서 상대를 괴롭히는 타입의 선수였다.

훗날 코비가 인터뷰에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큰 키와 엄청난 운동늘력과 모든 기술을 다 갖췄기 대문에 현역시절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선수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전설의 티맥타임

올랜도에서 휴스턴으로 이적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는 야오밍과 콤비를 이루며 팀을 이끌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센터와 호흡을 맞추다보니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시즌이 흐르면서 둘의 2대2 플레이는 빛을 내기 시작했고 본인이 승부처에서 과감하게 슛을 던지는 해결사로써의 모습도 보여주게 된다.

그런 모습이 가장 돋보였던 경기가 2004년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홈경기였는데 맥그레이디는 이 경기에서 티맥타임이라고 불리우게 될 장면을 보여주기 전까지 형편없는 야투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33초동안 13점을 혼자 넣으며 팀을 구해내는 장면을 연출했다. 상대의 수비도 최선을 다했고 딱히 흠잡을 만한 플레이도 없었지만 혼자서 계속 득점을 올리는 장면을 기억하는 팬이 많을 것이다.

 

이후 부상으로 인한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잃어갔지만 아직도 회자되는 티맥 타임처럼 매번 공수에서 최선을 다하던 그의 모습은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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