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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닉스:1998-1999 기적의 8번 시드

by 이니웍스 2022. 1. 19.

선수노조 파업

1998-99 시즌 NBA 선수노조의 파업에 의해 직장폐쇄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팀당 50경기 단축시즌으로 시즌이 치러진다.

이 당시 뉴욕 닉스는 앨런 휴스턴이 실질적인 에이스였고 패트릭 유잉은 아킬레스건 부상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유잉은 잦은 부상과 나이 탓에 팀에서도 이제 더 이상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미래를 새로 그려나가고 있던 시즌이었다. 닉스는 우선 수비는 좋으나 기복이 심한 존 스탁스와 기량이 하락 중이던 찰스 오클리를 내보내고 당시 리그에서 최고 문제아였던 라트렐 스프리웰을 영입하였고 마커스 캠비를 영입해 유잉의 뒤를 이으려 준비 중이었다. 다행인 것은 캠비의 수비력은 뛰어났고 특히 블록슛에서 리그 정상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된 후 캠비가 아닌 유잉이 주전으로 나섰는데 매우 저조해진 득점력은 안타까웠지만 골 밑에서는 여전히 존재감을 보여줬고 그가 팀의 중심을 지켜주어 스프리웰과 휴스턴은 자유롭게 공격에 전념할 수 있었다.

 

트윈 테러

앨런 휴스턴, 라트렐 스프리웰 이 둘은 모두 뛰어난 공격력을 가진 가드였기에 팬들은 이들에게 트윈 테러라는 별명을 붙여줬지만 시즌 내내 이 둘에게 과연 제대로 된 콤비플레이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스프리웰은 기본적으로 팀 분위기를 망치는 폭력적이고 거친 성향의 선수였고 플레이에서의 기복이 심한 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휴스턴과 각자 정확한 외곽슛과 런앤건, 그리고 폭발적인 돌파력은 뉴욕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다만 이런 활약을 시즌 초부터 보여줬다면 이 시즌의 가장 극적이었던 플레이오프와 파이널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911 테러가 일어나자 트윈과 테러라는 단어 자체가 상징하는 바가 달라졌기에 그 명칭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뉴욕 닉스의 심장, 유잉의 부상

시즌이 진행될수록 패트릭 유잉의 아킬레스건 부상은 악화되어갔고 개막 후 한 달 뒤 밀워키와의 경기에서 점프볼 후 착지 과정에서 부상이 심해져 그대로 경기에서 이탈하게 된다. 유잉의 이탈과 함께 뉴욕 닉스의 성적은 곤두박질치고 플레이오프 진출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다행히 유잉이 시즌 중 복귀하고 다시 승수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며 샬럿 호네츠를 1 게임차로 간신히 따돌리고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마침내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고 8번으로 진출한 뉴욕 닉스의 상대는 마이애미 히트였다. 마이애미는 당시 알론조 모닝과 팀 하더웨이를 주축으로 뉴욕만큼이나 공격적인 수비를 펼치며 전성기를 달리던 팀이었다. 전문가들 역시 마이애미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유잉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수비에 집중하며 팀을 이끌었고 5차전에서는 모닝을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압도하는 활약을 보이며 1번 시드였던 팀을 무너뜨리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당시 유잉은 공격은 불가능할 정도의 몸 상태였지만 1라운드 첫 경기에서 32분가량을 뛰며 15 리바운드 4블록을 기록한다. 5차전에서도 22점 11 리바운드를 기록했으니 흔히 말하는 정신력이 육체를 지배했다는 경지였던 것 같다.

다음 상대는 디켐베 무톰보를 중심으로 탄탄한 전력을 구축했던 애틀랜타 호크스였으나 유잉과 뉴욕의 신들린듯한 플레이에 맥을 못 추고 4게임 연속으로 완패를 당했다.

컨퍼런스 파이널 상대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였는데 이때 유잉은 걷는 것조차 힘들어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주변에서도 왜 말리지 않느냐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상태를 짐작해볼 수 있다. 게다가 고질적이었던 무릎 부상까지 악화되어 공격 가담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몸상태에도 그는 무려 40분간 출장하여 16점 10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기여한다.

하지만 2차전 결국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진다. 변함없이 출장한 유잉의 몸은 정신력으로도 이겨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마치 시한폭탄과도 같은 상태였다. 결국 무릎과 아킬레스건 모두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하체를 쓰지 못하는 상태로 던진 와이드 오픈 찬스를 날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당연히 슛은 빗나갔고 이 장면은 유잉의 시즌 아웃을 의미했다.

의료진으로부터 더 이상 출장을 하면 앞으로의 선수생명이 끝날 수 있다는 경고도 받았다고 한다. 

패트릭 유잉의 이탈 이후에도 파이널까지 진출에 성공한 뉴욕 닉스는 제프 밴 건디의 전술과 멤버들의 선전 백업 멤버들의 투혼으로 매 경기를 접전으로 끌고 가며 모든 농구팬들을 열광시켰다. 데이비드 로빈슨과 팀 던컨을 상대로 선전했으며 샌안토니오의 마리오 엘리는 유잉과 래리 존슨이 정상 컨디션이었다면 7차전까지 갔을 것이고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라는 말로 뉴욕 닉스를 칭송했다.

하지만 이 시즌을 끝으로 이제 한 시대를 이끈 센터 중 한 명의 역사는 서서히 마무리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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