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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마버리:공격 중심의 슈퍼스타 미네소타의 젊은 늑대들 스테판 마버리는 브루클린 출신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형 셋도 농구선수로 대학까지는 잘 갔지만 모두 NBA 진출은 실패했다고 한다. 마버리도 형들을 따라 농구를 시작해 길거리 농구에서 이름을 날렸고 고등학교 시절 유망주들만 출전할 수 있던 맥도널드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조지아 텍 대학으로 진학한 후 1년 만에 지긋지긋한 가난과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NBA에 진출을 선언한다. 그의 기량 자체는 NBA 진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였고 1라운드 4번이라는 높은 순위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되게 된다. 그리고 바로 트레이드 되어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데뷔하게 된다. 전 연도에 케빈 가넷을 얻은 미네소타는 마버리까지 얻으며 둘이 미네소타의 미래를 책임질 것이라.. 2022. 1. 25.
안토니오 맥다이스:앨라배마의 짐승 앨라배마의 짐승 앨라배마 대학 출신인 안토니오 맥다이스는 엄청난 운동신경으로 NBA 스카우터들에게 일찌감치 눈도장을 찍어놓은 선수였다. 대학시절 올 아메리카 세컨드 팀에 선정되기도 한 그는 1995년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다. 이 드래프트에서 맥다이스는 2순위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에 지명받고 바로 덴버 너기츠로 트레이드 되게 된다. 95년 드래프트에서는 5위가 케빈 가넷, 라쉬드 월러스가 4위, 제리 스택하우스가 3위였던 드래프트였다. 맥다이스의 가치를 어느 정도로 평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덴버에서 루키시즌을 시작한 그는 그 해 13.4 득점 7.5 리바운드 1.5 블록을 기록하며 괜찮은 성적을 냈고 루키 퍼스트팀에도 선정되게 된다. 당시의 덴버는 디켐베 무톰보가 있긴 했지만 수비에 비해 별 .. 2022. 1. 25.
앤퍼니 하더웨이:부상으로 몰락한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 이후의 최고의 아이콘 한때 그랜트 힐과 함께 NBA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던 선수였던 앤퍼니 하더웨이는 멤피스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낸 소년이었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할머니 손에 자랐지만 할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우범지대에 살았던 그는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농구선수로 성장하게 된다. 하더웨이가 농구를 시작한 계기가 조금 특이한데 친구들과 미식축구를 하다 크게 다치고 돌아오는 날이 많았는데 할머니가 그에게 저런 덩치들에게 깔리면 넌 죽고 말 거라고 얘기하며 농구도 미식축구만큼이나 재밌는 스포츠라고 설득해서였다고 한다. 농구선수를 선택한 앤퍼니 하더웨이는 고등학교 시절 평균 36.6 득점 10.1 리바운드 6.2 어시스트 3.9 스틸 2.8 블록슛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으로 전미에서.. 2022. 1. 24.
그랜트 힐:전성기를 앗아간 발목부상 아버지에게 재능을 물려받다 그랜트 힐의 아버지는 예일 대학교를 나온 엘리트였으며 미식축구 선수기도 했다. 그는 12년 동안 러닝백으로 활약했고 신인왕과 4번의 올스타, 한 번의 우승을 경험했을 정도의 좋은 커리어를 가진 순수였다고 한다. 그랜트 힐은 이런 아버지의 피지컬과 운동신경을 물려받아 대학시절 대단한 활약을 하며 듀크대학교를 2년 연속으로 NCAA 정상에 올려놓게 된다. 이런 활약 때문에 듀크대학교에서는 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정도였다. 4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참가한다. 그의 대학시절 엄청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퍼듀의 글렌 로빈슨에게 1순위를 빼앗기긴 했지만 결국 최후에 승리한 것은 그랜트 힐이었다. 힐은 물론 공동수상이긴 했지만 루키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제이슨.. 2022. 1. 24.
케빈 존슨:피닉스의 전설 새크라멘토 시장되다 90년대 최고의 공격형 포인트가드 케빈 존슨 케빈 존슨은 1990년대 존 스탁턴, 게리 페이튼, 팀 하더웨이와 더불어 NBA를 대표하는 포인트가드였다. 통산 9.1 어시스트를 기록할 정도로 동료를 살려줄 줄 알았던 그였지만 팬들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하킴 올라주원에게 In your face덩크를 성공시킬 정도의 운동신경을 가진 폭발력 있는 공격형 가드의 이미지였다. 그는 UC 바클리를 졸업 후 87년에 1라운드 7번으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드래프트 되었다. 당시 팬들은 팀에 마크 프라이스라는 좋은 가드가 있었기에 다른 포지션의 선수를 지명하기를 원했지만 구단에서는 그를 지명했고 팬들은 야유를 쏟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드래프트 1년 전 케빈 존슨은 오크랜드 어슬레틱스에 유격수로 지명될 정도로 농구 외.. 2022. 1. 23.
앤서니 메이슨:90년대의 드레이먼드 그린 팀에서 버림받다 앤서니 메이슨은 대학 시절 4년간 평균 18.7 득점 8.1 리바운드 2.4 어시스트를 해낼 만큼 좋은 선수였다. 다만 그의 포지션이 파워포워드였는데 NBA 무대에서 파워포워드를 보기에는 너무 작은 신장(201cm)을 가지고 있던 탓에 그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가 드래프트에 참여했던 1980년대에는 요즘처럼 스몰 라인업을 활용하던 시대도 아니었고 그 정도 사이즈 빅맨으로 성공한 선수도 찰스 바클리 정도였다. (찰스 바클리는 198cm였다.) 힘들게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되긴 했지만 서머캠프에서 보여준 그의 플레이는 구단에 확신을 심어주지 못했고 결국 개막을 앞두고 방출 당하고 만다. 그 후에는 터키 리그에서 뛰거나 미국 실업리그에서 뛰었다고 한다.. 2022. 1. 23.
데틀레프 슈렘프:최초의 유러피언 올스타 NBA 최초의 유럽 선수 데틀레프 슈렘프 데틀레프 슈렘프는 덕 노비츠키 이전에 독일인으로써 NBA에서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선수였다. 유럽 선수들의 NBA 진출이 활성화되지 않은 80년대에 독일인 선수가 All-NBA Team과 세 번의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한 당시의 유러피언 선수 중 최고의 업적을 이뤄냈었다. 다만 슈렘프는 독일 레버쿠젠의 청소년 팀에서 뛰다가 미국으로 이주해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맹활약하며 NCAA Pac-10에서 퍼스트 팀에 선정되기도 하며 외국인이 아닌 미국 선수로 분류되어 1985년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1라운드 8순위로 지명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외국인일지라도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경우 드래프트에서 외국선수 자격이 아닌 미국선수로 분류되어 동일한 자격을 갖게 된다.. 2022. 1. 22.
레지 밀러:왕은 자신의 왕국을 버리지 않는다 3점 슛으로 스타가 되다 레지 밀러는 신장 201cm에 체중이 90kg이 나가지 않은 NBA에서 흔하지 않은 몸을 가진 선수였다. 이 선수를 1987년 트래프트에서 인디애나가 지명하자 팬들은 심한 야유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레지 밀러는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까지 오른 레전드가 된다. 이렇게 마른 레지 밀러가 NBA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무기는 바로 3점 슛이다. NBA에는 1979-80 시즌에 처음으로 3점 슛이 도입되는데 초창기에는 너무 생소한 룰이었고 기존 방식에 익숙한 선수들은 골대 가까이에서 확률 높은 슛을 던지는 것을 선호했다. 지금은 스테판 커리가 한 시즌 400개의 3점 슛을 성공시키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3점 슛은 공격에서 중요한 옵션이 아니었다. 레지 밀러는 이런 시대에 매년 300.. 2022. 1. 22.
글렌 로빈슨:퍼듀 대학의 Big Dog 아마추어 최고의 재능 글렌 로빈슨은 인디애나 북부의 게리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실업률이 높고 범죄율이 치솟던 살기 힘든 도시였다고 한다. 로빈슨은 이곳에서 자랐고 자칫하면 교도소나 들락날락할 신세가 될 수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교도소를 그를 홀로 키웠는데 다행히도 그는 농구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이 재능으로 환경을 극복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NBA 선수들이 엄청난 아마추어에서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지만 글렌 로빈슨은 그들과도 차원이 다른 선수였다.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늦은 중학교 3학년 시절 농구부에 가입해 농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지만 엄청난 재능의 힘으로 빠르게 지역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로 인정받게 된다. 1991년 인디애나주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에게 주어지는 미스터 인디애나 바스켓볼 어워드.. 2022.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