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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리프 압둘라힘:'96 드래프트의 숨겨진 스타 전미 최고의 고교 선수 샤리프 압둘라힘은 이름으로 인해 오해받곤 하지만 미국인이며 부모가 모두 무슬림이어서 태어나면서부터 이 이름을 사용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2년 연속으로 Mr. Basketball을 수상할 정도의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선수였고 팀을 주 우승으로 이끈 에이스였다. 졸업 후 UC버클리에 진학하였으며 1학년 때 평균 21.1 득점 8.4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1학년 선수 최초로 Conference Player of The Year를 수상하기도 한다. 이후 바로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때가 1996년으로 NBA 역사상 가장 스타를 많이 배출하기도 했던 그 해였다. 드래프트에 참가했던 선수들만 나열해도 올스타팀이 구성될 정도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쏟아졌는데 앨런 아이버슨, 스테.. 2022. 1. 30.
존 스탁턴:The Point Guard 저평가받은 유망주 존 스탁턴은 굉장한 재능을 가진 선수였다. 곤자가 대학 시절 야투율 57%를 기록할 정도로 정확한 슛을 가지고 있던 선수였고 그 외의 다양한 장점이 있었지만 그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환상적인 어시스트와 게임 리딩일 것이다. 스카우터 들은 당시의 그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1984년 올림픽 대표팀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었는데 최종 탈락하긴 했지만 이것을 계기로 관계자들은 그의 재능을 알게 된다. 1984년 드래프트에 참가한 그는 1라운드 16위로 유타 재즈에 지명되게 되는데 이 드래프트에서는 마이클 조던, 하킴 올라주원, 찰스 바클리 등이 참가했던 드래프트였고 상대적으로 그의 존재감은 적은 편이었다. 후에 스탁턴이 NBA에 남기게 된 기록들을 생각하면 너무 초라한 순위였지만 유타.. 2022. 1. 29.
트레버 아리자:트레이드로 팀을 옮기다 뉴욕의 최연소 신인선수 2004년 드래프트 43순위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트레버 아리자는 그렇게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대학시절 UCLA에서 25경기 평균 11.6 득점 6.5 리바운드 1.7 스틸을 기록할 정도의 선수였고 뉴욕에 드래프트 된 후 80경기에 출장했고 12번의 선발 출장도 있었지만 다음 해 데이비드 리가 드래프트 되며 출전 기회를 잃어가게 된다. 트레버 아리자의 이적이 시작되다 2006년 2월 트레버 아리자는 앤퍼니 하더웨이와 묶여 스티브 프렌시스와 트레이드되며 올랜도 매직으로 이적하게 된다. 21경기에 출장하였으며 평균 4.7 득점을 기록했고 다음 해에는 평균 8.9 득점, 4.4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2007년 11월 다시 브라이언 쿡, 모리스 에반스와의 트레이드로 로스앤젤레.. 2022. 1. 29.
프레드라그 스토야아코비치:밀레니엄 킹스의 Peja 프라드라그 스토야코비치 밀레이엄 킹스의 일원이 되다 프라드라그 스토야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출신의 선수로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된 후에는 세르비아 국적으로 기록한다. 그는 어릴 적 축구를 좋아했지만 계속 키가 자라며 축구에 부적합하다는 소리를 듣고 농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PAOK에서 활약하던 그는 1996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4번으로 새크라멘토에 지명받지만 2년간 유럽리그에서 더 뛰다 1998년 새크라멘토 킹스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스 리그에서는 평균 23 득점, 유로리그에서는 평균 20점을 기록했다. NBA에 데뷔한 초반에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으나 2000-01 시즌부터 평균 20 득점을 기록하며 발전한 모습을 보이고 그는 단순한 외곽 슈터가 아닌 내 외곽이 모두 뛰어난 .. 2022. 1. 28.
마커스 캠비:The Cambyman 대학시절 팀 던컨과 함께 최고의 빅맨으로 평가받다 마커스 캠비는 1996년부터 2013년까지 NBA에서 활약한 수비형 빅맨이다. 선수생활 후반기에는 트레이드로 여러 팀을 전전하기도 했지만 그는 고등학교 시절 평균 27 득점 11 리바운드 8 블록 8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던 유망주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매사추세츠 대학교에 입학해 19-96 시즌 NCAA 전국 대회에서 4강까지 팀을 이끄는 기적을 선보인 이기도 했는데 웨이크 포레스트의 한 학년 아래의 팀 던컨과 대학 최고의 빅맨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96-97 드래프트에 참가한 그는 아이버슨과 1순위를 타툴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결국 아이버슨에 밀리긴 했지만 2번으로 지명되며 토론토 랩터스에 입단하게 된다. 그는 고교와 대학시절 좋은 .. 2022. 1. 28.
빌 레임비어:The Prince of Darkness 배드 보이즈 보스턴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라 대학생이 된 빌 레임비어는 농구를 위미로 여길뿐 프로 진출을 꿈꾸는 학생은 아니었다. (좋은 선수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학 3학년에 출전한 NCAA 토너먼트에서 팀이 8강까지 오르게 되는데 이때 괜찮은 활약을 한 후 생각이 바뀌며 NBA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팀이 8강에 올랐을 뿐 본인의 대학시절 성적은 형편없는 편이었다고 하고 1979년 드래프트에 참가해 3라운드 65번으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지명되긴 하지만 팀에서 떨어지는 운동능력으로 인해 주목받지 못하고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해 한 시즌 활약한 후 다시 클리블랜드로 돌아오게 된다. NBA로 복귀한 그는 주전으로 뛰며 9.8 득점과 8.6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내게 되.. 2022. 1. 27.
말릭 실리:가넷의 멘토이자 진정한 리더 21번의 남자 번호를 보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선수가 있는 몇 개의 번호가 있다. 23번은 마이클 조던, 41번은 덕 노비츠키, 3번은 앨런 아이버슨 같이 그 번호를 본인의 고유 숫자처럼 만든 선수들이 있다. 21번은 지금은 팀 던컨의 번호로 이미지가 굳어졌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는 던컨과 가넷의 숫자였다. 둘은 리그를 대표하는 파워포워드였고 경기 스타일은 달랐지만 각자 리그에서의 상징성과 뛰어난 기량 등 계속 서로 비교되던 NBA의 대표적인 선수였다. 하지만 가넷이 보스턴으로 이적하며 영구결번인 21번을 달 수 없었고 5번을 달고 뛰었는데 이때부터 21번은 마치 던컨의 고유번호처럼 불리어졌다. 가넷은 이때 2번을 달고싶어했지만 이 번호도 영구결번이었던 탓에 5번을 선택했다. 가넷에게는 21번과 2번 모.. 2022. 1. 27.
에디 존스:우승 직전 트레이드 된 비운의 선수 레이커스 재건을 위해 선택받다 에디 존스는 템플 대학교 출신의 선수로 슈팅가드와 스몰포워드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였다. 1994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0위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지명받게 된다. 당시 레이커스는 리그 최정상을 다투던 시절의 멤버들이 모두 팀에서 사라지고 매직 존슨마저 HIV 감염으로 은퇴를 했던 시절이었다. 레이커스는 이전에 비해 전력은 분명히 약해져 있었지만 닉 반 엑셀과 세드릭 세발로스, 블라디 디박에 에디 존슨까지 더하며 팀의 재건을 노리고 있었다. 닉 반 엑셀은 정확한 3점 슛과 과감한 돌파로 팀에 활력을 주던 선수였고(물론 구단과 수많은 마찰을 일으키는 반항아이기도 했다.) 세드릭 세발로스는 3점 슛은 별로였지만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런앤건에 강했으며 페인트 존 공략에도.. 2022. 1. 26.
찰스 오클리:마이클 조던의 보디가드 조던을 보호하다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난 찰스 오클리는 미식축구와 농구 두 종목에 모두 관심을 두고 있던 선수였다. 하지만 버지니아 유니온 대학에서 농구장학금을 제의받고 농구를 선택하게 되었고 데이브 로빈슨 감독에게 농구를 배웠다고 한다. 그가 대학시절 세운 리바운드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터프한 수비와 리바운드에 일가견이 있던 오클리는 1985년 고향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드래프트 되었지만 바로 시카고로 트레이드 되게 된다. 당시 시카고에는 전년도에 데뷔한 마이클 조던이 있었지만 원맨팀 수준인 팀이었는데 오클리가 합류하면서 골 밑에서 집중 공략당하던 조던의 보디가드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NBA는 핸드체킹이 허용되고 거친 파울을 해도 자유투만 주어졌기 때문에 수비는 굉장히 더티했고 팀.. 2022. 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