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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쿠코치:유럽 최고의 선수 시카고에 오다 유럽 최고의 선수, 토니 쿠코치 토니 쿠코치는 208cm의 키에 뛰어난 슈팅과 볼 핸들링 패싱 등 공격력에 있어 매우 뛰어났다고 평가받는 유로리그와 NBA에서 활약했던 선수이다. 1985년 유고슬라비아 리그의 유고플라스티카 스필트에 입단해 첫해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87년 유고슬라비아 농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세계 주니어 선수권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 시절부터 토니 쿠코치는 유로리그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88년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고 서울 올림픽에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로 출전해서 은메달을 따기도 한다. 89년에는 유로 리그 우승과 리그 2연패, 유로 바스켓 우승을 이뤄내며 크로아티아 올해의 스포츠맨에 선정되기도 한다. 1990년에는 유로리그 2연패를 달성하며 MVP도 수상하게 된다. .. 2022. 1. 21.
아비다스 사보니스: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다 아비다스 사보니스 금메달을 목에 걸다 아보니스 사보니스는 소련의 리투아니아 공화국 출신의 농구선수이다. 1964년에 출생하여 13세부터 농구를 시작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대단한 기량을 뽐내며 15세부터 소련 유소년 대표팀으로 경기에 나서게 된다. 17세가 되던 1981년 고향팀이자 소련 내 강팀인 BC.질기리스에 입단하여 꾸준히 성장하였으며 사보니스는 9년간 뛰며 유럽의 크고 작은 대회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된다. 그가 소련이 아닌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된 계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는데 이 대회에 소련팀으로 참가하여 준결승에서 데이비드 로빈슨, 데니 매닝, 미치 리치몬드가 뛰는 미국 대표팀을 꺾어버렸다. 결승에서도 유고슬라비아 대표팀마저 이기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당시 유고슬라비아에는 드라젠 .. 2022. 1. 21.
디켐베 무톰보:Mt. Mutombo 의사를 꿈꾸던 디켐베 무톰보 디켐베 무톰보는 자이르(콩고 민주공화국)에서 10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교 교장이었다고 하며 무톰보의 학창 시절 성적은 상위권이었다고 한다. 그의 꿈은 원래 의사였고 축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그런데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형이 무톰보와 아버지와 논의 끝에 축구가 아닌 농구를 선택했다고 한다. 피나는 연습으로 실력을 키우던 그는 20세에 형과 함께 자이르의 청소년 국가 대표팀에 뽑히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활약을 본 미국 대사관 직원이 디켐베 무톰보의 시합 영상을 조지타운 대학교의 존 톰슨 주니어 감독에게 보냈고 감독은 바로 무톰보를 조지타운에 입학시키게 된다. 하지만 당시 무톰보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NCAA에서는 기준 학력에 못 미치는 학생은.. 2022. 1. 20.
미치 리치몬드:The Rock/Run TMC The Rock 미치 리치몬드는 1988년부터 2002년까지 NBA에서 활약했던 슈팅가드로 뛰어난 득점력을 지닌 내 외곽 상관없이 공격이 가능한 선수였으며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강력한 위력을 뽐내던 선수였다. 동시대에 활약했던 마이클 조던도 그의 슈팅력이 본인보다 낫다고 인정했던 선수였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리그를 대표하던 마이클 조던, 클라이드 드렉슬러에 조금 가려져 인지도면에서 조금 떨어지기도 했지만 당시 레지 밀러, 글렌 라이스와 함께 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슈터로 꼽히기도 했다. 위협적인 슈터인 동시에 굉장히 다부진 몸을 가진 선수로도 유명했는데 당시 NBA 선수들과 비교해보면 몸 자체가 두껍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 때도 마찬가지로 다부진 체격을 가진 선수였다. 그러다 보니 경기에서.. 2022. 1. 20.
벤 월러스:최고의 수비수 BIG BEN 미지명 선수 벤 월러스는 대학시절 NCAA 디비전2에서 MVP를 수상하며 활약했지만 포지션에 비해 너무 작은 2부 대학리그 출신 선수에게 관심을 갖는 구단은 없었다. 월러스는 프로필상 206cm로 되어있지만 실제 키는 203cm정도였다. 이것도 신발을 신고 잰 신장이어서 NBA에서는 도저히 빅맨으로 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월러스는 NBA 진출이 좌절되고 이탈리아 리그로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 워싱턴 불리츠의 단장 웨스 언셀드가 그를 눈여겨보고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당시 워싱턴에는 올스타급 포워드였던 크리스 웨버와 주완 하워드가 버티고 있어서 월러스는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이후 조금씩 출장시간을 늘려가며 활약하지만 3:1 트레이드로 올랜도 매직으로 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벤 월러스는 조금씩 두각.. 2022. 1. 20.
천시 빌럽스:저니맨에서 우승까지 다섯 팀을 전전하다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난 천시 빌럽스는 조지 워싱턴 고등학교 재학 시절 93년부터 95년까지 세 번 연속으로 Mr. Colorado Basketball을 차지할 정도의 유망주였고 콜로라도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1997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다. 이때 1순위는 팀 던컨이 확정되어 있었고 천시 빌럽스는 3순위로 보스턴 셀틱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뛰어난 유망주였지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보스턴의 기대를 저버렸고 시즌 도중 감독에게 항명하다가 토론토 랩터스로 트레이드 되게 된다. 그리고 99년 고향인 덴버 너기츠로 이적했지만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고 1년 뒤 다시 올랜도 매직으로 트레이드되지만 부상으로 한게임도 뛰지 못한다. 실패한 선수라는 .. 2022. 1. 20.
케빈 가넷:The Big Ticket 빼빼 마른 고졸 루키 케빈 가넷은 1976년 이후 20년 만에 고등학교만 마치고 NBA에 드래프트 된 선수이다. 워크아웃에서 탁월한 운동능력으로 주목을 받았고 고등학교 시절에도 MCDonald's All-American Game에 출전해 18 득점 11 리바운드 4 어시스트 3블록을 기록하며 전국적인 관심을 받던 선수였다. 하지만 NBA 무대에서는 그의 몸무게가 발목을 잡았는데 211cm의 장신임에도 100kg이 안 되는 몸무게 때문에 자신의 위치가 애매했다. 파워포워드를 보기에는 파워가 너무 부족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데뷔 초에는 중용되지 못했는데 감독이 플립 손더스로 교체되며 가넷은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게 된다. 그는 데뷔 초기에는 스몰포워드로 자주 출장하였고 올스타에 출장할 정도로 성장한다. .. 2022. 1. 20.
제이슨 윌리엄스:White Chocolate 제이슨 윌리엄스의 쇼타임 NBA 역사에서 팀명 앞에 쇼타임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팀은 몇 되지 않는다. 우선은 카림 압둘 자바와 매직 존슨이 활약하던 80년대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는 득점이 많지 않던 리그에서 최고의 득점력을 뽐내던 팀이었고 매직 존슨의 볼 핸들링과 현란한 패스 팀원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리그 최정상에 군림하던 팀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공격에 너무 치중하고 화려함만 추구하는 팀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시절 5번의 NBA 타이틀을 이뤄냈고 이들은 의외로 굉장히 효율적인 농구를 구사하던 팀이었다. 공격만 잘하는 팀이 우승을 이뤄낸 역사가 몇이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히 나올 것이다. 다음으로는 스티브 내쉬가 이끌던 04년 피닉스 선즈이다. 이 당시 피닉스는 마이크 댄토.. 2022. 1. 20.
트레이시 맥그레이디:T-Mac Time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생계를 위해 NBA에 입성하다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는 야구선수가 꿈인 소년이었다. 하지만 집은 매우 가난했고 가난과 배고픔을 달래려 매일 공을 던졌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TV에서 페니 하더웨이의 경기를 보고 농구선수를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오번데일 고등학교로 진학해서는 학교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나 학교 교사와의 갈등으로 마운트 지온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된다. 마운트 지온 고등학교에서의 그는 97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뛰는 고교선수중 최고라는 평을 받았고 많은 대학에서 그를 탐냈지만 생계를 위해 고등학교를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다. 카터와의 이별과 수퍼스타의 탄생 전체 9위라는 좋은 순위로 지명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는 토론토 랩터스와 계약을 하게 된다. 당시 GM이었.. 2022. 1. 20.